37. 태어나 처음 수영장에 가다

[사하라의 별빛 아래서]

요즘 차드는 너무 더워 숨쉬기도 만만치 않다. 문 앞에 심겨진 한 송이 채송화를 보며 대견하다 말해준다. 이 더위를 힘겹게 이겨내는 너를 보며 생명의 위대함을 배운다고 속삭인다. 어김없이 찾아온 살인 더위는 하나님을 더욱 더 의지하게 만든다. 살아내자, 생명을 보전하자! 들에 핀 풀 한 포기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곳, 여기는 광야다.

더위에 지친 아이들을 보며 이벤트를 베풀어 주기 위해 고심한다. 수영이 최고인데, 여기선 쉽지 않다. 이곳 ‘문두’(Moundou)엔 딱 두 곳에 수영장이 있는데(여기가 ‘차드’(Chad) 두 번째 도시 맞는 거지?), 하나는 호텔에 있다. 이곳은 너무 비싸서 시도도 못하고 포기한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면화공장에 작은 수영장이 딸린 클럽에 노크를 해본다. 마침 프랑스에서 주인이 돌아와 가격흥정을 할 수 있었다. 손님이 없어서 문 닫기 일보직전이라며 울며 겨자 먹듯 수락한다고 한다. 협상의 달인이라도 된 듯 뿌듯하다. 서로 손해 보는 것은 아니니 미안할 수 없다.

아직 넘어야 할 언덕이 여러 개다. 그 많은 수영복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한국에서 들어온 구제품들 속에 간간히 섞여 들어오는 수영복을 찾아 이곳저곳을 이 잡듯 뒤져본다. 아내는 풀빵 집에 생쥐 드나들듯 매일 시장에 출근한다. 며칠을 찾고 찾은 게 겨우 25개다. 결국 남자아이들은 축구복으로 대신하기로 하고 여자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돌려 입기로 했다. 어차피 수영장도 작아 백 명을 다 수용할 수도 없다. 우리 차로는 아이들을 한꺼번에 다 수송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드디어 디데이가 되었다. 일찍부터 아이들이 학교에 나와 있었다.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하다. 출발! 힐럭스(Hilux)에 이십 명을 태우는 경이로운 일을 연출하고도 다 태울 수 없어서 삼륜차를 두 대나 대절하여 8명의 아이들을 먼저 파송했다. 조심조심 살금살금 천천히 수영장에 도착했다. 일단 수송작전 성공이다.

기대했던 대로(?) 수영복을 처음 입어보는 여자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 쭈뼛거리기만 한다. 남자아이들도 알몸을 드러내는 것이 쑥스러워 서로 눈치만 본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물속으로 이끌까 고민하고 있는데, 클럽을 관리하는 카메룬 아주머니가 보더니 면박을 주기 시작한다. 남자애들이 입은 옷이 수영복이 아니라고 투덜거리며 우리를 한참을 나무란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아주머니는 무시하기로 마음먹고 이 몸이 직접 나섰다. 평소에 근육 좀 키워놓았어야 하는데…… 후회하며 웃통을 벗어 젖혔다. 믿는 자는 나를 따르라. 물에 들어갔다.

물속에 들어가서는 언제 쭈뼛거렸나는듯 아이들은 금새 물 만난 고기가 되었다. 이렇게 좋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상상은 했지만 막상 눈앞에 펼쳐진 모습을 보니 캐리비안 해안의 파도보다 더 큰 감동이 가슴속에서 밀려왔다.

나흘 동안 펼쳐진 수영장 대이동은 작은 출애굽 같았다. 그날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곳은 막다른 지경이었다. 몸 밖의 바로와 애굽의 철병거가 문제가 아니었다. 내 마음이 원망과 믿음이 교차하며 치열한 싸움을 펼치는 전쟁터이다. 마라의 쓴물을 쏟아내는 그들에게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됨 볼지어다. 열방과 세계 가운데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제한하는 우리는 믿음의 난쟁이다. 막다른 지경은 우리의 믿음의 지경을 넓혀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무대장치인 것을. 우리는 잠잠히 주께서 행하실 일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바라보면 된다. 그렇다. 쇼타임(Showtime)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