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아프니까, 아프리카?

[사하라의 별빛 아래서]

지옥을 경험했다. 아내와 작은 일로 다퉜다. 자존심이 상해서 먼저 화해하기 싫었다. “왜 매일 나만 먼저 화해해야 하는가?” 말도 안 되는 자존심이 바른 태도를 이겼다. 그래서 버텼다. 아내가 시장바구니를 챙겨 나갔다. 시장바구닌 시장 갈 때 가지고 가는 것이니, 당연히 시장엘 가는 줄 알았다. 근데 저녁 때가 다 되도록 들어오지 않았다. 시장을 만 바퀴를 돌고도 남을 시간이 지났다. 여긴 한국 사람은 우리밖에 없고, 가깝게 지내던 미국선교사님 부부도 수도로 올라가서 안 계신데. 갈 데가 달리 없는데……. 미친 사람처럼,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앞이 캄캄하고 내일이 영영 올 것 같지 않았다.

그날, 지옥을 경험했다. 지옥은 관계가 깨어진 곳에, 화해가 사라진 곳에, 은혜가 메마른 곳에서 독버섯처럼 생겨나는 것 같다.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또 강 건너 불 같은 광경이지만 매일 지옥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프리카엔 많다. 내가 겪은 지옥은 지옥도 아니다, 그들에겐.

서부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에볼라는 아직도 진행형으로 그 지배력을 늘려가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습격으로 지금까지 4,500여 명이 숨졌다고 한다. 10월 초 ‘라이베리아’를 다녀온 ‘세이브더칠드런’ 미국 사무총장은 “감염된 아이들의 75%가 목숨을 잃고, 부모를 잃은 4,000여 명의 고아들은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며 “오늘 당장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국제보건 전문가인 론 월드먼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서아프리카 3개국의 보건시설 대다수가 의료진이 없어 문을 닫아, 생명을 위협하는 말라리아나 폐렴에 대한 치료도 받을 수 없다.”고 전했다.

또 다른 서부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는 시민들이 쟁취한 27년간의 독재에 대한 승리를 군부가 가로채려고 한다. 군부 쿠데타다. 하루속히 평화로운 정부, 참된 민주주의가 실현되길 바란다. “늙어 죽던 총에 맞아 죽던 죽어야만 대통령에서 물러난다.”라는 말은 아프리카에서 진리처럼 회자되고 있다. 이 땅 차드도 비슷한 상황이라 남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옆 나라 나이지리아에선 이슬람 무장단체 ‘보코하람’의 테러와 폭력, 약탈과 납치로 사람들은 불안한 매일을 보내고 있다. 10대 여학생 2백여 명을 납치했던 보코하람은 “우리 사전에 휴전은 없다.”며 “악행을 멈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며칠 전 한 마을을 기습하여 또 많은 여자들을 납치했다. 이들은 근거지를 늘리기 위해 카메룬과 차드 국경을 넘으려고 한다. 나이지리아북부와 잇닿은 차드와 카메룬의 국경지대에선 그래서 하루를 멀다 하고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곤 한다.

또 다른 이웃, 중앙아프리카 수도 방기(방귀가 아님)는 멈추지 않는 분쟁으로 유령의 도시가 되었다. 급증하는 교전으로 사상자가 넘쳐나지만 길거리에 나가는 것 자체가 너무 위험해 가까운 병원조차 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지난 12월에 내전이 심해지자 7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을 떠나 차드로 왔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학살당한 많은 사람들은 차드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인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내부의 상황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아이들은 이미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으며, 이제는 죽음만을 남겨놓고 있다.

차드는 지금, 우기가 끝나가고 있다. 말라리아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는 시절이 되었다. 이제야 좀 안심이 된다. 밤에는 제법 시원한 바람이 방안을 찾아와 편안한 단잠을 약속해 준다. 그러나 선뜻 잠을 이룰 수 없다. 내일 아침엔 밝은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내일 휘발유를 구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모처럼 불어온 신선한 바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차드는 벌써, 주유소를 향하는 순례자들의 행렬이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휘발유를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주유소마다 순례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 틈에 끼여 여기저기 다녀본다.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놀라고 가격에 또 놀란다. 포기하고 돌아서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 또한 차를 돌린다. 내일을 도둑맞은 사람들을 보는 것 같아,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 삶에 지친 사람들은 정부에 대한 불만이 목구멍까지 가득하다고 말들 한다. 곪으면 언젠간 터진다고 하는데, 걱정이다.
언제나 아프리카에서 희망을 노래할 수 있을까?


* 아내는 그날 시장에 가질 않았다. 시장 바구니에 책과 도시락을 넣고 방학 중인 데이케어센터에 가서 독서를 하고 왔다고 한다. 저기압을 피해 맑은 공기를 마시며 마음에 새 바람을 넣으러 간 것이다. 아내가 저녁 노을을 등에 지고 돌아오는 모습 속에서 천국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