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숨 고르기

[사하라의 별빛 이야기]

 

차드로 돌아갈 날짜가 정해졌다. 벌써부터 마음 한 구석이 걱정과 기대감으로 출렁인다.
이제 출발선에 선 선수처럼 숨 고르기를 할 때이다. 호흡은 생명을 유지하는 것 이상이다. 생각과 감정을 지키는 것은 숨 고르기로부터 시작된다.
먼저 날숨을 통해 긴장, 염려를 털어 내고 들숨으로 성령을 채운다. 오직 충만함만이 안에 있는 불안과 염려를 몰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과 육체, 영혼이 진리 안에서 일치하여 평안하도록 돕는 분께서 우리의 ‘숨’이 되시는 성령이시다.

술 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술 취함은 신과 합일에 이르는 길로 여겨졌다. 축제와 종교의식마다 술이 중심에 자리하는 이유이다. 이것을 잘 아는 바울 사도는 “술 취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려면 먼저 술 취함을 멀리해야 한다. 세상의 것으로 가득한 사람의 내면에는 성령께서 머물 수 있는 자리가 있을 수 없다. 숨 고르기는 성령충만을 위한 첫 걸음이다. 기도로 성령을 호흡해야만 성령의 다스림을 받을 수 있다. 그래야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된다.

또 “성령이 임하시면……너희가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땅끝, 그곳이 어디든 간에 증인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먼저 받아야 한다. 우리의 땅끝인 차드로 떠가기 전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며 숨 고르기를 시작한다.

땅에 쓰신 글씨와 숨 고르기
땅에 쓰신 글씨가 뭘까 늘 궁금했다. 예수님께서, 올무를 만들어 놓고 당장 대답하라고 몰아 세우는 군중들의 격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신 것은 숨 고르기를 하셨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숨 고르기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신 것이다. 뜨거운 난로 위에서 거친 소리를 내며 끓고 있는 주전자를 내려놓아 주셨다고 할까?
그들의 잘못된 놀이에 휘말리지 않고 주님께서는 차분히 자신의 사역을 하셨다. 그들의 호흡에 말려들지 않고 자신의 호흡을 하셨다.

땅에 무언가 쓰신 것, 또는 그리신 것은 회피가 아니었다. 그들이 가져온 표면적인 것이 아닌 사람의 근본적인 것과 대면하신 것이다. 하나님과 대면할 때만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다. 숨 고르기는 객관화이다. 모든 것을 땅의 시각이 아닌 하늘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높은 곳에서 전체적으로 보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이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려 하나님의 시각으로 그들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그녀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냉철하게 자신들을 바라보게 하셨다. 자신들을 생각하는 그 관대한 시선으로 그녀를 보게 하고 싶으셨다. 우리는 두 개의 다른 창을 가졌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선 관대하고 남에 대해선 옹졸한 창을 가졌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 관대함으로 그녀를 보고 그녀를 보는 냉철한 창으로 자신을 보게 하셨다.

그날 무언가 땅에 쓰신 예수님의 숨 고르기는 시각화였다. 생각하는 것을 적는 것은 놀라운 힘이 있다. 어떤 상황이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표현할 때 우리는 단지 추상적인 차원에서가 아닌 구체적인 맥락에서 그 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려지거나 기록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본질을 그날 한 여인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예수님께서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사랑이셨다.

예수님의 손과 그들의 손이 크게 대조된다. 잡혀온 여인 눈에는 더욱 그러하였다. 도살장으로 끌어가기 위해 짐승을 끌듯 그녀를 끌고 온 손, 손가락질도 모자라 돌멩이를 들고 있는 또 다른 수많은 손들과 예수님의 손은 달랐다. 거기 함께 계시지만 그들과 조금 떨어져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손이었다. 율법의 문자들을 들이대며 여인을 정죄하는 손가락과 율법의 정신을 가리키며 여인을 품으신 예수님의 따스한 팔이 대조되고 있었다.

이제 주님과 여인만 남았다. 물론 제자들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은 제자들도 그 어떤 누구도 그 자리엔 없다고 성경저자는 본다.

예수께서 일어나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요 8:11)

여인과 주님만이 단 둘이 있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는 순간이다. 세상의 모든 소음과 정죄의 목소리가 사라진 곳에 이제 갓 태어난 아기의 심장박동 같은 대화가 진행된다. 이 대화는 우리와 예수님이 언젠가 나눠야 할 대화다.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하던 자들이 어디 있느냐?”

“주여 없습니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아라.”

그날 예수님께서는 땅에 무어라 쓰셨을까? 아무도 모른다. 며느리도 모른다. 그럼 시어머니는 알까? 아니 모른다. 내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궁금하다면, 천국에 가서 물어봐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에서는 우리의 거룩한 상상력에 맡기셨다. 나의 상상력으로 들여다 본 내용은 이렇다. 주님은 수학공식을 적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율법을 어김 = 반드시 죽음” 그 누구도 이 공식에 자유로울 수 없다. 돌멩이를 던지던 이들과 그들을 배후에서 조종하던 율법사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율법의 껍질만 알뿐 정신을 모르는 사람들은 더욱 매섭게 달려든다. 그만 쓰라는 것이다. 빨리 대답하라는 것이다. 주님이 그 때까지 쓴 것을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녀는 죽어야만 한다. 어디 그녀뿐이겠는가? 결국 첫 번째 공식에 자유로울 수 없는 그들도 죽어야 한다. 우리는 어떨까?

그러나 주님은 한 가지 더 쓰시기 원하셨다. “하나님의 은혜 = 반드시 살림”, 첫 번째 공식을 십자가에서 온몸으로 홀로 담당하신 예수님만이 베풀 수 있는 은혜의 공식이다. 우리에게 부여된 율법의 요구를 대신 이루시고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심으로 완성하신 공식이기 때문이다. 그가 대신 돌멩이를 맞았다. 대신 찢기고 대신 상하셨다. 대신 죽으셨다. 은혜공식은 그래서 성립이 될 수 있게 되었다. 오직 예수님만이 이 공식이 참이 되게 하셨다.
우리에게 매일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 매일 매일이 소중한 날이며, 삶은 치열한 격전장이기 때문이다. 율법과 은혜는 끊임없이 싸운다. 미움과 사랑, 보복과 용서가 사계절처럼 우리 곁을 늘 순환한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 나가기 전 냇가에서 물맷돌을 주우며 숨 고르기를 했다. 우리도 지금 물맷돌을 고르고 있어야 한다. 우리의 생각주머니에 정죄의 돌멩이들을 버리고 은혜의 말들을 주워 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