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아, 말라리아여!

[사하라의 별빛 아애서]

후회와 아쉬움만 남기고 이렇게 떠나야 한단 말인가? “아니, 아직은 안 됩니다. 주님! 난 아직 주님 만날 준비가 안 되었네요. 부끄러움만 가지고 갈 순 없잖아요.”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표현밖에는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 없다. 삼 개월 간격으로 두 번의 말라리아 공격을 받고 내 몸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그러졌다. 도저히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이른 것만 같았다. 태어나서 처음 링거라는 것도 맞아 보았다. 그것도 왠지 불안한 현지 클리닉에서. 살기 위해선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야 했다. 지푸라기 끝에 동아줄이 묶여 있고 그 끝이 주님의 손에 붙잡혀있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 15:26)

차드에서 십 년을 살았어도 이렇게 심한 말라리아는 처음이다. 그동안 말라리아로 고통 받는 현지인들을 수 없이 지켜보았고 도왔다. 도움의 손길을 늦게 펴 주님께로 보내야만 했던 이들도 더러 있다. 옆집 ‘기’는 지금도 잊지 못할 아이다. 뒤늦게 많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그래, 날이 밝으면 병원에 가자.’ 그런데 새벽의 여명이 채 밝기도 전에 그는 날 기다리려 주지 않고 떠나갔다. 다시 못 올 그 길을 간 것이다. 얼마나 후회스럽고 미안하던지 아직도 그는 우리 가슴에 남아있다.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가슴에 묻는다고들 한다. 그 말은 백 번 천 번 옳다. 옆집 아이도 이렇게 떠내 보내지 못하고 가슴에 묻는데 하물며 친자식을 잃은 부모님의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내가 기적같이 회복될 때쯤 이번엔 아내가 나가 떨어졌다. 역시 몹쓸 말라리아다. 아! 말라리아여.
오랜만에 딸 빛터와 즐거운 연말연초를 보내고 학교에 돌려보내려 했는데…… 엄마 아빠가 모두 그 작은 모기에 물려 사경을 헤매고 있으니, 미안하구나! 무리한 여행과 강행군이 문제가 되었던 것 같다. 라디오방송국 벽돌 만들기와 우물 파는 곳엘 아픈 중에 다녀왔다. 아무리 아파도 학교에 빠지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학교에 가야만 했던 그 옛날의 습관이 나를 그곳으로 데리고 갔다.

몸은 점점 부자유스러워지는데, 아이의 개학 날짜는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 상태로 그 먼 길을 어찌 간단 말인가(우리가 있는 차드 ‘문두’(Moundou)에서 이웃나라 카메룬 ‘야운데’(Yaounde)까지는 도로에서만 나흘을 보내야만 다녀올 수는 먼 곳이다)?
그런데 갔다 왔다. 자식이 무엇이며 부모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부성과 모성을 내가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그저 내 아이를 향한 나의 죽음을 감내하는 헌신을 보고 조금 짐작할 뿐이다. 가시고기 이야기가 생각나는 건, 이 세상 모든 부모는 자식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크고 작은 가시고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은 가시고기였다.

초등학교 때 제일 부러운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학교를 파하고 그 친구 집에 따라 갔다. 가방을 마루에 던져놓곤 이내 부엌으로 직행하는 친구를 따라 나도 들어갔다. 친구는 노란색 양은냄비에 물을 붓고 풍로에 불을 붙였다. 석유 냄새와 특유의 그을음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싫지 않은 냄새다. 아니 향긋하기까지 했다. 무얼 하려나 궁금했는데 깜짝 놀랐다. 찬장 위 라면 박스에서 라면을 두 개나 꺼내는 것이 아닌가? 가운데를 봉지 채 툭 부서트리자 라면봉지가 밤송이 열리듯 뜯어지면서 두 도막 난 라면을 위로 내밀었다. 조각난 라면 부스러기를 함께 먹으면서 난 너무 놀랍고 부러워 그 오묘한 맛도 느끼지 못했다.

라면, 우리 집에선 아플 때나 어쩌다 졸라서 얻어 먹을 수 있었다. 어쩌다 라면을 끓이면 전혀 반갑지 않은 멀대 같은 국수도 듬뿍 넣어 끓였다. 꼬불꼬불 라면은 반가워도 쭉쭉 뻗은 국수는 싫었다. 꼬불꼬불 라면이 조금이라도 더 들어간 그릇이 내 차례가 되길 마음으로 얼마나 원했던지! 그런데 이 친구는 그 귀한 라면을 박스에서 맘껏 꺼내 끓여 먹다니.

그 친구에 대한 나의 부러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쫄깃하고 꼬불꼬불한 라면을 냄비 뚜껑에 담아 후루룩 먹으면서 만화책을 보는 것이 아닌가? 〈소년중앙〉, 〈어깨동무〉…… “야, 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녀석이구나!”라고 속으로 부러움을 표출하였다.

어릴 적 내가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은 라면이었다. 어릴 적 내 꿈은 만화가였다. 내가 원하는 걸 모두 가진 그 친구는 당연 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날 이후 그 친구는 내게 부유함과 자유함의 상징이 되었다. 언제나 먹고 싶은 라면을 자유롭게 끓여 먹을 수 있고 보고 싶은 만화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그 친구는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요 제일 행복한 자유자로 보였다. 친구야, 오늘 이후 누군가 내게 넌 무엇이 되려느냐 묻는다면 난 주저 없어 ‘내 친구, 라면 탁- 만화책’라고 외칠 것이다.

한국인이 겨우 30명인 차드에 한국 라면을 파는 곳은 없다. 그런데 이번 말라리아 끝 무렵에, 그러니까 무언가를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때에 꼬불꼬불 그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그 옛날 그 친구의 부유함과 자유가 오늘 내 것이 되었다. 한국의 한 기도원에서 보내온 소포를 이번엔 받았기 때문이다. 그 속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어김없이 라면이 들어 있었다. 그것도 원조 SY라면이. ‘파 송송 계란 탁!’ 역시 고향의 맛이다. “이건 단순히 라면이 아니라 약이여!”

그리고 함께 보낸 수건에 어김없이 인쇄된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문구도 눈에 들어왔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난 혼자인가벼.” 그렇게 느낀 적이 많았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 또 멀리 있지만 기도로 늘 함께 하시는 사랑하는 후원자들이 마음에 자리하고 있지만 때론 외로웠다. 한국 사람은 나와 아내만이 유일한 이 도시(아내는 결코 도시라고 말하지 말랜다)에서 한국 사람이 때론 그립고 한국 음식이 가끔 먹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이곳에서 혼자라 느끼는 우리에게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주님이 등 두드려 주시는 것 같아 이젠 외롭지 않다.


* 말라리아는 알려진 바로는 네 종류의 말라리아 원충이 사람에게서 말라리아를 일으키며, 원충에 따라 다른 형태의 말라리아가 유발된다고 한다. 그 중 열대열 원충에 감염되면 대부분의 경우 사망하게 된다. 발병 후 바로 치료하지 않으면 48시간 이내에 사망하게 되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바로 이 열대열 원충이 차드 남쪽에 많이 발생한다. 사실 에이즈보다도 아프리카에서 어린이의 생명을 더욱 많이 앗아가는 것이 바로 말라리아다. 안타까운 것은 말라리아 백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그저 모기에 물리지 않는 게 최상의 대비책이다.

*가장 위험한 동물
“지구 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이 무엇인지 아세요? 상어? 뱀? 아니면 인간? 물론 그 답은 당신이 위험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영화 〈죠스〉를 본 뒤 상어가 가장 위험한 동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드는 동물이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모기입니다. 모기는 어떤 동물보다 사람을 많이 죽입니다.”

빌 게이츠가 한 말이다.
빌 게이츠는 모기가 위험한 이유로 말라리아를 들었다.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는 해마다 60만명 이상의 목숨을 뺏는다고 그의 블로그에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