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나의 아비가일 나의 보아스여

오랜 광야 생활 속에서 다윗은 서서히 잊혀져 갔다. 자신이 누구인지 다윗도 서서히 망각해가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에서 기름부음 받은 왕의 모습은 조금씩 지워져 갔다. 이제는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저 광야의 떠돌이들을 이끄는 우두머리일 뿐이다. 그러한 다윗에게 나발이란 어리석은 사람이 돌을 던졌다. 그 돌은 다윗의 정수리에 꽂혔고 다윗은 이전처럼 반응하지 못했다.
이전에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미친 개처럼 달려드는 사울에게 관대함이 무엇인지 세상에 보여주었다. 다윗은 두 차례나 자신을 미친듯이 죽이려고 덤벼드는 사울을 살려주었다. 부하들의 충동질과 간청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사울의 생명을 보존해 주었다. 그러나 나발에게 반응한 다윗의 모습에서 그러한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은 오래된 화석처럼 아스라이 굳어져갔다.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집어 들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를 무찌르고 취한 칼! 성전에 바쳐졌던, 그 거룩한 칼로 이제 다윗은 개인의 복수를 서두르고 있다. 그 칼은 그의 감정에 휘둘리는 대로 춤을 추며 피를 뿌릴 것이다.

그러한 다윗을 일깨워준 아름다운 여인, 아비가일! 하나님은 다윗을 잊지 않았다. 그의 손바닥엔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선명히 다윗의 이름이 빛나고 있었다. 하나님은 손바닥에 다윗이라 새기고 한시도 잊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다윗이 그대로 화석이 되도록 바라보고만 계시지도 않았다.

저주의 칼을 휘두르며 살기등등하게 말을 몰아 달려오는 다윗을 향해 조용히 다가오는 나귀를 탄 가냘픈 여인! 그녀가 아니었다면 다윗은 또 하나의 사울 왕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막아섬이 다윗을 가던 길에서 돌이켜 세웠다. 그리고 용서와 평화의 길을 걷게 했다. 그 길은 예루살렘(샬롬의 도성)으로 이어진 복된 길이었다.
훗날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오르신 예수님은 나의 아비가일이다. ‘차드’라는 광야에 있으면서 나도 서서히 화석처럼 굳어져갔다.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버려진 존재 같아 서글펐다. 나를 돕는 자는 눈을 감았고 너무 멀리에 있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사실을 잊었다. 그러나 나에게도 아비가일이 있었다. 그는 나를 잊지도 버리지도 않았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그는 나의 목마른 영혼을 그렇게 새벽에 적셔주었다. 오 나의 주님, 나의 아비가일이여!

오 나의 주, 나의 보아스여!
룻은 아무런 소망이 없는 빈털터리 늙은 미망인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랐다. 누가 봐도 그것은 바보짓이었다. 그녀의 눈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다면 분명 그것은 젊고 아름다운 그녀에게 소망과는 거리가 먼 길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그녀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젊음의 발걸음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내딛고 있었다.

어리석은 여인의 대명사, 어리석은 선택의 대가로 세상에 기억될 그 이름을 하나님은 예수님의 족보에 올려 놓았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나오미도 아니었고 그녀가 가져다 줄 그 어떤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하나님을 따랐던 것이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요 12:26)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귀히 여겨주셨다. 룻을 통해 텅 비어버리고 모두(남편과 두 아들) 잃어버린 나오미를 풍성히 채워줄 보아스가 바로 거기 있었다. 작고 남루한 옷자락으로 시어머니를 품기 위해 애쓰는 룻을 보아스는 넓은 옷자락으로 따뜻하게 덮어주었다.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룻 3:9)

보아스는 여호와의 날개였다.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룻 2:12)

차드는 내게 나오미와 같았다. 나는 거기서 아무런 소망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땅을 섬기기로 한 내게 보아스가 있었다. 그는 나의 구체적인 필요를 알고 있었고 채워주셨다. 보아스는 룻이 모르게 그 사환들을 시켜 그녀를 도왔다(룻 2:15-16). 그분께서는 나의 허물과 부끄러움을 그 넓은 옷자락으로 덮어주셨다. 암탉이 병아리를 그 날개 아래 품듯 그분께서는 나를 그렇게 넉넉하고 따뜻한 날개 아래 품어주셨다. 오 나의 주님, 나의 보아스여!
그리고 나에게 룻도 있었다. 늘 곁에서 힘이 되어준 사랑하는 아내와 딸, 그리고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주시는 동역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