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병자호란(病者好亂)

요즘 우리 유치원에서는 한참 병자호란(病者好亂) 중이다. 몇 아이들이 집에서 다치거나 아파서 결석을 했다. 공주라는 이름을 가진 ‘Princesse’는 손톱이 거의 빠질 지경이 되었다. ‘엠마누엘’은 머리가 온통 곪아서 보기조차도 너무 끔찍한 모습으로 며칠만에 나타났다. 다음 날은 털모자까지 쓰고 나타났다.

“이렇게 더운데, 게다가 온통 머리가 곪아 진물이 줄줄 흐르는데, 부모님이 도대체 정신이 있는 사람이야, 없는 사람이야? 신선한 공기가 통하게 해야~지. 이게 뭐야.”

속으로 투덜거리며 모자를 벗겨주려고 했다.
“아~ 아!”

죽는다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곯아터진 곳에서 진물이 흘러나왔고 그 진물이 마르면서 접착제가 되어 모자를 머리통에 붙여놓았던 것이다. 모자를 벗길 때 딱지가 같이 당겨지니 죽는다고 소리를 지른 것이다. 어디 이들뿐인가.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은 발이 온통 상처로 가득하다. 그들 중 우리 옆집에 사는 ‘스티븐’은 발바닥이 큰 상처로 많이 부었다(그의 아빠는 17살이다. 아이가 아이를 낳은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여럿 보아와서 이제는 많이 놀랍지도 않다). 집에서 다친 아이들은 대부분 상처에 잉크 같은 것을 바르고 나타난다. 민간요법으로 치료를 한 것이다.
아이들의 상처를 소독하고 마데카솔을 발라주었다. 내 주변으로 아이들이 파리떼들처럼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므씨으 폴(Mr. Paul)!’ 하면서 몸 여기저기를 가리킨다.
“나도 아파요, 나도 여기 상처가 났어요.”

관심을 끌고 싶은 것이다. 신기한 약의 마술을 경험하고 싶은 것이다. 약을 발라달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보면 이미 다 나아 흉터만 남아있거나 상처라고도 할 수 없는 너무도 작은 것들이다. 그들의 바램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면봉에 아주 조금 연고를 묻혀서 발라주면 너무도 좋아한다. 그 순간 그것은 영광의 상처가 된다.

나의 환자들은 질병이 자연적인 어떤 원인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을 하지 못한다. 그들은 질병의 원인을 악령, 인간의 마술, 벌레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벌레는 고통의 화신인 것이다. 그들은 병의 증세를 말하라고 하면, 벌레의 내력을 말한다. 벌레는 처음에 다리에 있다가 머리로 올라오고 그 다음에 심장에 옮아가서 폐로 들어가서는 나중에 배에 자리를 잡았다는 그런 식인 것이다. 어떤 약이든 이 벌레의 공격을 목표로 삼아야만 하는 것이다. 내가 아편팅크로 복통을 진정시켜주면 다음날 희색만면에 찾아와서 벌레는 배에서 쫓겨났지만, 이젠 머리 속으로 들어가서 뇌를 파먹고 있으니 이번에는 머리 속의 벌레를 내쫓는 약을 달라고 하는 것이다.

약의 용법을 이해시키는 데 상당한 시간을 허비한다. 통역은 몇 번이고 되풀이 해서 가르쳐주고 환자에게 복창을 시킨다. 병이나 상자 위에 써서 마을의 글을 아는 사람한테서 다시 들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렇지만 결국엔 한 병의 물약을 단번에 마셔버리기도 하고 고약을 먹기도 하고 가루약을 피부에 문지르지 않는다는 보장은 못한다(슈바이처,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46~47쪽).

여기 사람들은 아직도 질병에 대해 많이 무지한 것 같다. 한번은 내가 자동차에 브레이크 액을 보충하고 있는데, 경비가 그 브레이크 액을 조금만 달라고 하는 것이다. 왜냐고 물었더니 몸에 옴이 나서 가려워 견딜 수가 없다고 한다. “왜 그것을 바르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모두 그렇게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브레이크 액은 그 냄새도 아주 고약하다. 모르긴 해도 절대 치료제가 될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더 해로움에 틀림없다.

차라리 깨끗이 씻고 맑은 식용유를 발라 주는 게 낫지 않을까? 내가 약을 가져다 줄 테니, 매일 비누로 깨끗이 씻고, 그것을 바르라고 처방해주었다. 다음날 세 명의 아이들이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약을 달라고 했다. 알고 보니 옴 약이 제대로 들었다는 경비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얻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한 번은 다른 곳에 심방을 갔다 오는 길에 옆집에 들렀다. ‘비앙브뉘’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넘어져서 배기 통에 발을 데였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발을 보니 무엇인가 이상한 것이 발라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분명 소똥이었다. 화상이 심해서 피부가 벗겨졌는데 거기에 소똥을 바르다니! “차라리 네 똥을 바르지 그랬냐. 네 똥이 소똥보다는 영양가도 훨씬 많을 거야.” 농담을 하고 절대로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마침 가지고 있던 화상에 탁월한 실마진 연고와 붕대를 가져다 주었다. 가능하면 물을 팔팔 끓인 후 완전히 식혀서 화상 입은 곳을 조심해서 씻기고 약을 바르고 붕대로 가볍게 감아주라고 했다. 당연히 이번에도 처방전은 효험이 있었다. 나도 어렸을 때는 상처가 나면 흙을 상처에 뿌려 피를 멎게 하였던 기억이 난다. 동네 친구가 가르쳐준 치료법이었다. 된장은 상추 위에만 아니라 상처 위에도 자주 발라졌었다.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 빨간약은 만병통치약이었다. 배 아프면 배에 바르고 머리 아프면 머리에 바르고. 그나마 빨간약도 우리 집에는 없을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빨간약이 있는 집이 부럽기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여기 의사가 필요해
여기 사람들은 몸이 많이 아프면 거의가 말라리아로 간주하고 길거리에서 파는 말라리아 약을 스스로 처방하여 먹는다. 아직도 이 땅은 많은 의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갑자기 어제 본 영화가 생각난다.

‘대단한 유혹La grande séduction’. 캐나다의 ‘셍-마리’라는 작은 섬은 예전엔 크게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행복했다. 남자들은 매일 새벽에 일어나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았고 저녁에는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그것을 나누어 먹으며 행복해했다. 그러나 그것은 옛이야기일 뿐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은 매월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으로 근근이 살아갈 뿐이다. 그들은 섬을 다시 살리기 위해 플라스틱 공장을 유치하려고 한다. 그러나 해결할 문제가 여럿 있어서 쉽지가 않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그 섬에는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공장 건설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기에 상주하는 의사가 한 명 이상 있어야만 한다. 이것이 법이다.

마을의 몇몇 사람들은 퀘벡에 사는 모든 의사에게 “선생님께서는 돈은 조금 덜 벌게 되겠지만,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깨끗한 공기, 수수함, 가족의 소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라고 편지를 써서 보냈다. 그러나 “날 믿어, 여기에 살고 싶어할 의사가 한 명쯤은 있어. 난 느낄 수 있어.”라는 ‘저메인’(마을 대표)의 기대와는 달리 그들의 모든 편지는 병원의 쓰레기통에 구겨진 채로 버려진다. 과연 이 마을을 구원할 의사가 있을까?

‘마이어’라는, 이 섬에서 살다가 도시로 나가 경찰을 하는 사람이 한 과속운전자를 붙잡았다.

“제가 너무 급하거든요. 지금 생사를 다투는 일을 위해 병원에 급히 가야만 합니다. 제가 의사거든요……”

그러면서 운전면허증을 꺼내려는데 그만 마약이 쑥 나오고 만다.

“당신이 의사라고요.”

“예, 성형외과 의사입니다. 당신이 원하면 부인을 언제든지 고쳐드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엉덩이, 모든 남자의 시선을 끄는 예쁜 엉덩이를 공짜로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의사라는 거죠.”

딱 걸렸다. 그는 아내의 예쁜 엉덩이를 가지는 것 따위엔 관심이 없다. 대신 섬에 남겨진 옛 이웃들을 위해 이 의사를 그 섬으로 보낸다. 벌칙으로 한 달 동안 이 섬에서 봉사활동을 하도록 명한 것이다. 이날부터 마을에서는 의사의 마음을 사기 위한 온갖 노력을 행한다. 그들의 노력은 눈물 나도록 우습다. 그런데 과연 이 의사가 마을에 남게 될까? 나중에 마을 사람들이 자기를 섬에 붙잡아 두려고 거짓으로 자신을 속인 것을 안 의사는 거짓과 진실 사이에서 분개하며 또 방황한다.

“의사가 없으면 마을도 아니다. 진실은 이거네. 우리가 의사 한 명 구해보라고 이러는 게 아니네, 120명의 생명을 구하려는 것이네……”

‘저메인’의 말 속에서 의사는 거짓 속에 숨겨진 그들의 순수한 진실을 발견한다. 짧지만 길었던 거짓과 진실 사이의 방황을 끝내고 말한다.

“…… 음, 좋아요. 5년 동안 당신들의 의사가 되어드리죠.”

의사와 ‘저메인’은 서로 달려가 포옹을 한다.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 부둥켜 안는다. 한 의사의 결정이 그 섬을 살렸다. 다시 섬은 활기로 가득 차고 집집마다 밤마다 이상한 탄성이 울려 퍼진다.
물론 이 땅에도 엉덩이를 예쁘게 만들어 줄 의사는 필요 없다. 그저 슈바이처 같은 의사가 우리 마을에 한 명쯤 있으면 좋겠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 4:23)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하시고, 병든 자를 치료해주셨다. 이것이 세상의 근본적인 필요를 채워주기 위한 주님의 방법이셨다. 교사, 목사 역할을 나름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의사 역할을 나는 할 수가 없다. 그저 약이나 나눠주고 기도해 줄 뿐이다. 치료자이신 주님께서 그들을 만져주시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