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 세렌디피티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단어가 있다. 위키피디아사전은 이렇게 정의한다; ‘완전한 우연으로부터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며……’

일반사전에서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뜻밖에 찾아내는 재능, 행운’이라고 정의한다.
이 단어를 내 방식으로 정의하면, 그것은 나의 18번이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운명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우연 같지만 하나님의 섭리 속에 이뤄진 아름다운 만남 말이다. 그 만남이 지금 여기로 우리를 이끌었다고 지난 삶을 노래하고 싶다.

이번 파리포럼이 내겐 그런 만남의 광장, 세렌디피티였다. 남보다 늦게 돌아 돌아 간 파리. 베트남 항공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건 순전히 절약을 위해 사서 하는 고생이었다. 갈 땐 8시간을 공항에서 쌀국수 한 그릇에 위안 삼으며 기다림과 친해지려 애쓰는 시간이었다. 올 때는 18시간을 기다려야만 하는 항공편이었다. 그것도 끔찍한데…… 출발을 앞두고 항공기의 기술적인 고장으로 출발이 연기되었다. 그래서 기다림은 고무줄처럼 10시간 더 늘어났다. 그렇게 28시간을 베트남에 머물게 되었다. 기다림은 선교를 하면서 늘 내 곁에 머물러 있던 단어였다. 익숙하지만 아직도 친숙하지는 않은 단어이다.

그런 오랜 기다림 속에서 이번 포럼을 통해 손바닥만한 구름을 볼 수 있었던 건 하나님의 은혜였다. 공항에서부터 포럼 장소까지, 워싱턴에서 오신 한 장로님 부부와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샤를 드골 공항은 내게 첫 세렌디피티의 장소였다. 장로님께서는 내 속에 쌓인 서러움을 아시기라도 하듯 많은 질문으로 이것들을 수면으로 건져 올리셨다. 아이 학교문제와 차드어린이 학교사역에 대해 많이 물어오셨다. 그 마법의 질문에 홀려 주저리주저리 내 속에 담아두었던 것들을 쏟아 내었다. 그동안 마음에 담아둔 씀바귀들이 많았던 것이다.

장로님 부부께서는 처음 보는 선교사가 나누는 그 씀바귀를 기꺼이 받아 드셨다. 누군가 내게 물어오는 것은 사랑과 관심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경청함은 믿음으로 그 아픔에 동참하는 것이다. 장로님의 질문과 경청은 그 자체가 내게 격려와 위로가 되었다.
새벽과 저녁에는 유명한 목사님께서 말씀을 전해주셨다. 이름으로만 알던 분을 얼굴로 알게 되어 기뻤다. 더욱 기뻤던 것은 기도의 사람을 보았다는 것이다. 목사님께서는 ‘차드의 어린이 부흥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기도 중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나누어 주시고 차드 선교사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셨다. 희망을 주셨다. 그래서 최목사님은 내 오랜 기도의 응답을 가져오신 하늘 우체부였다.
또 오랜만에 만난 가족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가 차드로 가기 전 프랑스 ‘앙제(Anger)’라는 곳에서 1년 동안 불어공부를 위해 살았던 적이 있다. 당시 그곳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님 덕분에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그분들을 8년만에 다시 만난 것이다. 새벽에 내린 함박눈처럼 조용히 오셨다.

또 그때 그곳에서 우리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어학을 하던 형철이네 가족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이 모든 분들은 나를 격려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위문편지였다.

만남은 계속되었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시던 분이 사업차 프랑스에 오셨다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교사로 부르고 계시다며 아프리카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먼저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는 선배 선교사를 격려하고 싶다며 쌈짓돈을 꺼내 주셨다. 그렇게 눈물의 헌금, 과부의 두 렙돈을 드리는 분들이 지나간 여정 가운데 수시로 있었다. 내가 힘들어도 선교를 놓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들이 멀리하는 차드에 다시 들어가기를 기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호치민 공항에서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필연적인 간섭인 성경 속 세렌디피티를 묵상해보았다.

룻이 가서 곡식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룻 2:3)

이방 여인 룻에게 그곳은 낯선 땅이었다. 아는 이 하나도 없는 타국이요 만나는 모든 것이 모험인 미지의 땅이었다.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룻 2:4)

룻이 ‘우연히’ 발 딛게 된 곳에 하나님은 ‘마침’ 보아스를 보내셔서 둘의 만남을 창조하셨다. 세렌디피티는 성경적 용어로 숨겨진 ‘은혜’라고 말할 수 있다.

나다나엘이 ‘우연히’ 다다른 곳에 ‘마침’ 나사렛 예수께서 오셨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 1:46)

친구 빌립의 손에 이끌리어 자기에게 다가오는 나다나엘을 바라보시고 예수님은 ‘속에 간사함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다.’라고 칭찬해주셨다.
우리는 나다나엘이다. 전혀 예수라는 사람과 만남을 운명적인 만남으로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가 내 삶에 선한 것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 삶의 한 모퉁이에서 만난 그분께서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셨고 햇빛 가득한 광장으로 이끌어 주셨다. 그는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던 나를 보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