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무서운 장례행렬(葬禮行列)

[사하라의 별빛 아래서]

저 멀리서 무더기의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결혼행렬? 아니 오늘은 토요일이 아니잖아, 그래! 장례행렬이다!”
“어제 먼지 바람이 심하게 불고, 비가 오는 것을 보고, 이제 사람들이 많이 죽겠구나 생각했어요.”
나의 말을 받아 아내가 말했다.

우리가 사는 동네에는 크고 작은 공동묘지들이 있다. 우리가 늘 이용하는 큰 길가쪽으로는 주로 그리스도인이 묻히는 묘지이다. 그래서 수시로 장례행렬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좁은 일차선 도로에서 이런 행렬과 자주 마주치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특히 내가 바쁠 때는 더욱 그렇다. 도로를 모두 점유하고 자동차와 오토바이부대를 앞세우고 거북이 걸음으로 느릿느릿 다가오는 행렬은 조급한 마음에 불을 지른다.

장례행렬과 마주치면 반대편 차들은 잠깐 멈춰 서준다. 고인에 대해 예를 표하는 것이다. 나도 예를 표하기 위해서 멈춰서지만 바쁠 땐 나도 모르게 속으로 이렇게 속삭이게 된다. “어찌하여 죽은 자가 산 자를 이다지도 힘들게 한단 말인가?”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길가에 차를 세웠다. 아내는 물건을 사기 위해 내리고 나와 아이는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뒤에서 장례행렬이 나타났다.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들로 구성된 행렬이었다. 특히 군인들과 경찰들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생전에 권세깨나 부리던 부자였던 것 같다. 그들이 잘 지나갈 수 있도록 차를 좀더 길가로 바짝 붙이려고 했지만 그럴 만한 공간이 조금도 없었다. 장사꾼들이 길 양쪽을 모두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장례행령의 선두가 내 옆을 지나게 되었다. 사뭇 두려운 마음마저 들었다. 너무도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는 괜히 눈을 흘기는 것 같기도 했다.

“아냐, 내가 잘못 본 거야. 왜 나한테 눈을 흘기겠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쾅쾅’ 하고 차를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그쪽을 쳐다보기가 무섭게 “이봐 쉬느와(중국인)! 차를 이따위로 대면 어떻게 해! 저리 비켜!”라고 말한다. 나보고 중국 사람이란다. “내가 어딜 봐서 중국사람처럼 생겼냐?”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지만, 뒤에 오는 다른 사람들도 계속 차를 두들겨 대며 비키라고 야단이다. 사실 그들이 지나갈 자리는 그런대로 충분했었다. 그들은 이렇게라도 죽은 자에게 잘 보이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 무서운 권력이여!

집에서 좀더 가까운 곳에는 회교도가 묻히는 공동묘지도 있다. 그들은 무덤을 어떻게 만드나 궁금해서 일부러 한 번 가 본 적이 있다.

여기에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회교도와 기독교의 다른 삶의 모습들을 보게 된다. 장례모습도 많이 다르다(알라를 섬기는 종교의 이름은 이슬람,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을 무슬림이라 부른다. 오늘날, 전세계 57개 나라, 12억의 인구가 무슬림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무슬림의 일생은 몇 가지의 통과의례로 살펴볼 수 있다. 출생 후 7일만에 하는 출생잔치와 남자아이의 할례식, 그리고 알라의 품에서 새 가족을 이루는 결혼식과 생의 마지막 의례인 장례식이 그것이다.
무슬림들은 염부터 매장까지 모든 장례과정을 24시간 안에 마친다. 장례 후 하루가 지나면 영혼은 육체를 떠나 마지막 알라의 대심판 날을 기다리는 장기간의 대기장소에 머문다고 믿는다. 죽음이란 신의 품으로 돌아가는 즐거운 일이라고 믿는 이들이기에, 낙원으로 가는 고인의 발을 오래 붙잡아 두는 것은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신은 반드시 모스크를 지나 매장지로 가게 된다. 이때 지인들은 고인의 생전 잘못을 용서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면 심판 날에 고인의 죄가 가벼워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안타까움은, 여인들은 장례식에도 소외된다는 것이다. 멀리서 숨죽이며 지켜볼 수 있을 뿐이다.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친지나 유족들은 결코 큰 소리로 울지 않는다. 엄숙하게 묵념을 하거나 조용히 흐느낄 뿐이다. 그래서 어쩌면 감정이 풍부한 사람들이나 여인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슬픔을 참아내야 하기 때문에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슬람에서의 매장은 시신을 관과 함께 묻지 않는다. 대신 묘실을 만들어 시신을 거기에 안치한다. 대개 묘실은 사람 키 높이 정도로 높게 만든다. 넓이는 3~4명이 안치될 수 있을 정도로 널따랗게 만든다. 이는 한 세대가 지난 후 가족을 그 옆에 매장하는 복장 관습이 있기 때문이란다. 무덤은 평지보다 약간 높게 하여 평평하게(평분으로) 만든다. 그래서 어떤 표식이 없으면 무덤처럼 보이지 않기도 한다. 특히 오래된 무덤은 비바람에 깎여나가 더욱 그렇다.

시신은 항상 머리가 메카를 행하도록 안치된다. 메카는 그들에게 있어서, 하늘을 향해 열린 지상의 유일한 문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카는 무슬림이라면 반드시 죽기 전에 한 번은 다녀와야 하는 것이 신앙의 의무사항이다.

회교도들이 이렇게 죽어서까지 메카에 지나치게 묶여 있는 것이 안타깝다. 그들은 나름대로 메카에 대한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아브라함이 그의 장자 이스마엘과 함께 이주해 그곳에 성전 같은 것을 지었는데 그곳이 바로 메카의 카바 신전이 있는 곳이란다. 장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참된 신앙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보다도 크시기에 인간의 손으로 만든 곳에 갇혀 있을 수 없으시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까(왕상 8:27).

솔로몬이 성전 건축 후 드린 이 고백이야말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으로부터 나온 고백인 것이다.

진리에 목마른 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도 장소에 집착하는 것은 바른 신앙, 참된 예배의 정신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 4:20-21)

이것이 진리인 것이다. 예루살렘조차도 신성한 곳이 될 수 없다.

형 에서에게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서 멀리 도망가야 했던 야곱, 광야에서 돌을 베개 삼아 자야만 했던 그에게 찾아오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방황하는 이들에게 문(하늘)을 열어 놓으셨다. 그리고 그들을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 년같이 기다리시는 아버지와 같으시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통해 소개된 아버지, 집 나간 탕자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와 야곱에게 광야에서 하늘 문을 여시고 찾아 오신 하나님은 그렇게 연결되는 것이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고……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창 28:12-17)

내가 방황하는 그곳이 하나님의 집이 될 수 있다. 배고픈 늑대의 울부짖음 소리를 들으며, 광야의 찬 이슬을 덮고 자야 하는 바로 그곳이 하늘로 통하는 열린 문이 될 수 있다. 그것은 구주 예수께서 오셨기 때문이다.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예수님)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요 10:9)

또 주님은 “내가 바로 그 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모든 인류를 위해 대신 죽으시는 그날에 자신께 의지하고 나오는 강도에게까지 천국 문을 열어주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

차드의 대부분의 집들이 흙 벽돌로 지어지고 지붕이 양철로 어설프게 엮여서 강한 바람에 종이 짝처럼 넘어지고 날아가기 일쑤다. 비가 올 때면 어김없이 찾아 드는 미친 듯한 바람이 우리 집 양철 지붕을 사정없이 두들길 때면 딸이 말하곤 했다.
“아빠, 지붕이 날아가면 어쩌지?”
“아냐,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그렇게 말하지만 사실 나도 마음으로 은근히 겁이 난다.

몇 년 전 우기철에 우리 동네에 두 집이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아이를 학교에 데리고 가려다가 소식을 전해 듣고 차례로 집으로 달려갔다. 흙더미에 깔렸던 아이들이 새파랗게 겁에 질린 얼굴로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다행히 이웃집 사람들이 그들을 얼른 끄집어 내어 재차 무너진 벽들의 공격을 모면할 수 있었다. 그들을 싣고 병원으로 달렸다. 그 작은 차에 10명이나 탔던 것 같다. 그땐 마을에 우리 집밖에는 차가 없었다. 아마 그들 중 하나라도 죽었으면 내 마음은 괴로움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렇다. 죽은 이를 장례행렬 속에서 만나는 것은 조금도 두려운 일이 아니다. 좀 불편하고 짜증날 뿐이다. 정말 두려운 일은 죽음의 책임자처럼 여겨질 때다. 마을에서 사역하시는 한 선교사님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픈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겁이 난다.”
한 아이가 많이 아프다고 해서 기도해주고 왔는데, 잠시 후 아이가 죽었다는 전갈이 왔다. 선교사님은 그의 죽음이 꼭 자기의 책임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오래전 옆집 아이가 죽었을 때, 그때 나는 죽기보다 더 무서웠다. 아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오늘은 늦었고 내일 아침에 가서 기도해주고 상태를 봐서 병원에도 데리고 가자 했는데, 아침이 밝기 전에 그가 죽은 것이다. 그때의 내 마음은 미칠듯이 아팠다. 죄인의 마음이었다. 차드에 몇 해를 지내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날로 기억된다. 며칠을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도무지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다. 아침까지 기다려주지 않은 죽음을 미워할 수도 없었다.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가 우리 모임에서 예수님을 영접한 일이 있음을 기억하고 그에게 열린 하늘 문에 감사하며 죄책의 눈물을 닦아야 했다.
차드에서 가장 더운 4월이 이제 막 지나갔다. 우기철이 시작되려나 보다. 살인 같은 더위와 예년보다 일찍 시작된 우기는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을 또 죽음으로 데려갈 것이다. 나는 또 그들을 길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저마다 사연을 안고 이 세상을 떠나는 고인에게 그리고 사랑했던 고인을 못내 떠나보내야만 하기에 몸부림치는 고인의 지인들을 좀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줘야겠다.


* 차드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남자가 45세, 여자가 47세다. 유아 사망률은 100명 중 12명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