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흰개미가 주는 교훈을 배우다

[사하라의 별빛 아래서]

아프리카 차드에 살면서 곤충 때문에 겪는 고초는 너무도 많다. 빛을 사랑하는 거룩한(?) 곤충들은 우기철이 되면 기가 막히게 바늘 구멍보다도 작은 구멍을 찾아 집 안으로 들어와 희미한 전등 밑에서 집회를 연다. 아침에 집 안을 쓸면서 수북이 쌓인 곤충들을 보면 참으로 그 집회가 어마어마한 군중들이 운집한 집회였음을 알게 된다.
이 곤충들 중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며 내 인내심을 도전해오는 곤충이 있다. 다름아닌 개미의 한 지파인 흰개미이다. 개미들도 사람들처럼 피부색으로 크게 세 종류로 나뉘는 것 같아 우습다. 제일로 많은 검은색 개미, 대충 우리의 피부색과 비슷한 밤색 개미와 아주 먹성이 좋은 흰개미가 있다(오직 피부색으로만 분류했음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불개미도 있고 다른 색 개미도 있지만 대충 이 삼색에 속하지 않을까?). 흰개미는 일광욕을 못해서 그런지 피부가 하얗다. 그리고 빛을 싫어한다, 아니 무서워한다.

집을 지을 때 재정이 넉넉하지 못해서 바닥을 철근 콘크리트로 공사할 수 없었다. 떠나는 선교사님이 주신 닭장용 그물을 철근 대신 넣고 자갈을 살 수가 없어서 모래와 시멘트만을 섞어 바닥 공사를 해야만 했다(차드는 강에 자갈이 거의 없다. 북쪽의 멀리 있는 바위산을 깨트려 자갈을 대신하다 보니 굉장히 비싸다). 완성된 집이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뒤틀리며 사방팔방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닭장용 철사 그물이 무슨 힘이 있겠는가?
벌어진 그 틈으로 무서운 그 흰개미들이 올라와 모든 것을 먹어 치운다. 나무 비슷한 것은 모두 먹어 치운다. 종이는 물론 심지어 스티로폼 같은 것도 제법 녀석들 입맛에 맛있나 보다. 녀석들이 워낙 굶주려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알버트 슈바이처 선교사가 쓴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을 읽다가 그분도 흰개미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낸 적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슈바이처 선교사가 1915년 적도에서 성탄절을 맞으면서 쓴 당시의 그의 일상은 많이 고단했던 것 같다. 당시는 그의 조국 독일이 전쟁을 일으켜 그도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연금생활). 당시 사역하던 곳이 큰 물난리를 겪어서 피해를 복구하느라 성탄절의 즐거움을 조금도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흰개미 녀석들까지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이젠 좀 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꽤 예방 수단을 강구해 두었는데도 흰개미가 약품과 붕대류의 재고품을 넣어둔 상자속으로 침입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여러 개의 상자를 뜯어서 속에 든 것을 다른 상자에다 다시 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일로해서 또 수주일의 휴식시간은 완전히 허사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그런 피해를 일치감치 알아낸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손해는 훨씬 크게 되었을 것이다. 흰개미에서 나는 독특한 단내와 같은 싫지 않은 냄새가 내 주의를 끌게 되었던 것이다. 겉으로 보면 상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개미는 마룻바닥의 조그마한 구멍으로 침입을 했던 것이다. 한쪽 상자로부터 건너 쪽과 겉에 있는 상자 속으로 파먹어 들어갔던 것이다. 코르크마개가 헐거워진 약용시럽의 달콤한 냄새가 개미를 유혹했던 것 같다.

아프리카의 땅에서 기어다니는 벌레와의 투쟁은 사실 굉장한 것이다. 예방 수단을 강구하는데 얼마나 시간을 허비하는지 모른다. 그래도 재삼재사 역시 생각지도 않은 습격을 받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분에 못 이겨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소용이 없게 된다.

내 아내는 밀가루와 옥수수를 양철 통에 넣어서 봉해 둘 수 있게 납땜질을 하는 법을 배워 두었다. 그러나 남땜질을 한 통 속까지도 해를 끼치는 작은 바구미 벌레가 수천 마리나 우글거리고 있을 때가 있다. 이 벌레는 닭의 사료인 옥수수를 순식간에 먼지와 같은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슈바이처,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162~163쪽).

흰개미는 오직 죽어있는 나무들만 하나도 남김없이 먹어 치운다. 살아있는 나무는 전혀 먹지 못하느냐고 물으신다면, 먹지만 껍질만 먹을 뿐 속은 절대로 건들지도 못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껍질도 오직 수액이 조금이라도 전달되는 부분은 먹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한 선배선교사는 이것을 가리키며 “우리가 예수의 생명으로, 성령의 생수가 충만할 때 사단은 우리를 밥으로 먹을 수 없지만 우리의 속사람에 생수의 강이 흐르지 않으면 사단의 밥이 되고 만다.”고 내게 이야기를 하면서 영적인 교훈과 연결시켜서 설명한 적이 있다.

빛을 싫어하는 녀석들. 그래서 그들은 지하 왕국에서 산다. 땅속에 집을 짓고 잘도 산다. 깜깜할 텐데 답답하지도 않은가 보다. 그래서 지상으로 나오면 입에 흙을 물고 와 자신들을 빛으로부터 가리기 위해(어둠을 만들기 위해) 터널을 만든다. 그렇게 한 입씩 물고 와 짓는 터널은 단 몇 시간 만에 어마어마한 단지를 이룬다. 신도시도 문제없다.
얼마나 집요하고 끈질긴지. 아무리 작은 틈도 결코 놓치지 않는다. 녀석들이 지어놓은 무허가 주택을 헐고 청소하고 구멍을 찾아 메우고, 녀석들은 다른 장소로 이동해서 또 무허가 주택을 짓고, 난 또 철거하고, 청소하고, 메우고…… 녀석들은 또 짓고…….

얼마나 영악한지 한 번 실패한 곳은 쉬 포기한다. 득이 없으면 금방 물러난다. 그러나 포기한 것이 아니다. 다음 기회, 다른 약한 곳을 찾아 잠깐 공격을 멈추었을 뿐이다.
녀석들은 협동심도 대단하다. 결코 혼자 하는 법이 없다. 서로 도와가며 공동의 목표물을 위해 일치단결한다.

아, 어쩌면 이렇게 어떤 존재를 그다지도 꼭 빼 닮았는지! 사단과 그 졸개들 같지 않은가? 빛을 싫어하고 진리를 미워하고, 할 수만 있으면 성도라도 밥처럼 집어 삼키려 하는 자, 하나님을 향해 감히도 맞짱뜨려 하는 자.
바로왕은 지칠 줄도 모르는 강철인간(Iron man)이다. 10가지 재앙 앞에서도 물러설 줄 몰랐다. “내가 졌다”라고 손을 드는가 싶으면 다시 도전하고, “당장 애굽을 떠나시오!”라고 말했다가, “근데 여호와가 누구지?”라고 잘도 잊어먹는다. 머리 속에 대단히 성능 좋은 대왕 지우개를 가진 존재인 것 같다.

예수님을 광야에서 세 번이나 시험했으나 요동하지 않자, 사단은 떠나갔다. 그러나 잠시 뿐이었다. 그는 다시 와서 할 수만 있으면 넘어뜨리려 했다.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공격하며 하나님의 뜻인 십자가를 지지 못하게 하였다. 제자 베드로를 통해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유혹하는가 하면(마 16:23),“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너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도전하며 유혹하였다(마 27:40).
흰개미가 하나의 목표를 위해 철저히 협력하는 것처럼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이었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어 주님을 대적하는 일에 똘똘 뭉쳤다.

영적으로 게을러진 나에게 흰개미는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그렇게 살면 넌 어둠의 밥이 되고 말아.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늘 푸르고 건강하여라! 그러면 어둠의 자식들은 너를 공격하여도 작은 외상만 입힐 뿐이지. 네 마음은 건드리지도 못해! 주님은 사단의 공격을 그토록 받고도 마음이 공격받지 않은 것은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셨기 때문이야. 예수님의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과 단둘이 교제하는 기도의 사귐이 있었다는 평범한 사실을 기억해보거라! 빛을 가까이함이 어두움을 이기는 비결이라구.”

다른 것으로는 우리가 사단을 이길 수 없다. 그 간교함과 거짓말의 대가, 심지어 빛의 사자로 변장하는 변장술의 대가, 약한 자에게는 사자처럼 덤벼드는 포악함의 대가, 하나님을 모방하며 사람들에게 경배 받으며 스스로 왕노릇하는 그를, 다른 것 우리의 것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