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아주 도드라진 것

[사하라의 별빛 아래서]

늘 삭막한 이 땅도, 우기철엔 전혀 다른 풍경을 선보인다. 무수한 강아지풀들이 꽃밭처럼 펼쳐진 들판에 바람이 서성일 때면 군무를 추는 듯 살랑거리는 모습은 메마른 자의 가슴에도 감탄을 자아낸다. 어릴 적 강아지풀 이삭을 잘라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손을 좌우로 흔들면 손바닥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이 살아있는 작은 물고기 같았다. 생명의 신비를 가르쳐주는 들판이, 생명을 싹트게 한 하늘의 비가 무척 고마운 요즘이다.

학교사역과 어린이개발사역을 하다 보면, 처음부터 아주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들이 있다. 눈에 띄는 아이들이 분명히 있기 마련이다. 압살롬이나 사울처럼 외모가 빼어난 아이들이 있고, 오홀리압처럼은 아니어도 재능이 특별한 아이들도 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처럼 적극적으로 다가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이들도 있다. 이렇게 저렇게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분명히 두드러진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중 더러는 실망을 안겨주는 아이들도 있고, 또 더러는 끝까지 신실한, 참으로 예쁜 아이들이 있다.
어린이개발사역에 나오는 아이들 중 작은 키에 똘망똘망한 모습이 마치 잘 깎아 놓은 밤톨 같은 아이가 있다.
‘크리스탈렝’이다. 자기보다 어깨 하나가 더 큰 형들과 누나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성경 반을 이끄는 보석 같은 아이다. 성경암송을 언제나 막힘 없이 해오고, 비가 오나 먼지바람이 불어도 결석 한 번 없는 참으로 신실한 아이다. 잘한다고 우쭐대지도 않지만 시기와 질투에도 기죽지 않는 당찬 아이다.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이곳에 언젠가 그가, 그들이 가져올 내일의 밝은 햇살을 기대한다. 이것을 생각하면 우기철 우중충한 나의 마음이 어느새 뽀송뽀송해진다.

반면에 처음엔 눈에 들어오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많은 아이들 속에 묻혀 있는 아이가 있기 마련이다. 특별한 재능이 없어서 준수한 외모가 아니어서 주목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또는 지나치게 내성적이어서 뛰어난 무언가가 있지만 자신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아이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원석처럼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아서 그 빛을 내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계속되는 빗방울에 감춰진 생명들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고 마침내 대지를 가득 메우듯, 아이들에게 사랑의 물을 끈기 있게, 또 꾸준하게 주다 보면 어느새 “나 여기 있어요.”라고 속삭이며 눈 속에 들어오는 아이들이 있다. 얼마나 예쁜지요! 대표적인 아이가 바로 ‘조이’이다. 조용히 왔다, 조용히 사라지는 산들바람 같은 여자 아이다. 지난 주에는 아파 보여서 가까이 다가갔더니 팔에 링거주사바늘을 꽂고 앉아 있었다. “조이 많이 아프니?”라고 물었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조용한 목소리로 “네, 근데 많이 나았어요.”라고 대답한다. 우기철엔 너나없이 많이들 아프다.
“집에 가는 게 어떨까?”
산들바람 같은 목소리로 “괜찮아요.”라고 속삭인다.
“그래, 그럼 아빠한테 얘기해서 다음 모임에 치료비 영수증 가져오도록 해.”

아픈데 치료도 못 받아 마음마저 힘들어하는 아이가 단 한 명도 없도록, 치료비의 절반을 지원하고 있다. 매주 한두 명씩 약값을 신청하고 있다. 요즘 우리는 우기철 질병과 사투 중이다.

이곳 아이들과 함께 보낸 무수한 세월이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나의 마음에 특별한 아이로 새겨 놓고 있다. 우리는 들판의 무수한 강아지풀 중 단지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직접 물을 주고 사랑으로 가꾼 농부의 눈에는 하나하나가 특별하고 존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