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그 길

[사하라의 별빛 아래서]

엊그제 독일에서 온 디구나(좋은 소식)선교회 대표와 함께 모나미 라디오방송국이 세워질 곳에 다녀왔다. 유럽에 폭설이 내려 공항이 폐쇄되어 올 수 없다는 소식을 듣고 못내 아쉬웠었다. 그런데 주님께서 하늘 길을 열어 그가 올 수 있도록 해주셨다.

그는 우리와 함께 동행해 방송국이 설 자리를 둘러 보고 넉넉한 대지와 우물, 선교적으로 중요한 위치, 그리고 현지 교인들이 자원하여 벽돌을 굽는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 당초 지원해주기로 한 30미터 송신탑을 60미터까지 높여 주기로 약속했다. 유럽교회들의 선교 열정이 식어 당장은 힘들지만 일이 년 안에 30미터를 더 중축해주시기로 했다. 하나님께서 길을 내시고 계시다. 사막에 길을!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하나님의 손이 하나씩 현실화시키시는 것을 목도하며 이 길이 주님께서 우리를 차드에 부르신 이유임을 알게 된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사 43:19)

생명의 소리가 달려갈 전파의 길이 하늘에 열리고 주의 말씀이 우리들 가운데서와 같이 보로로종족 사람들 가운데서도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될 것을 기대한다.

내가 길이요
길, 나는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어디쯤 걷고 있는지 생각하는 시간들이 많아지고 있다. 잦은 장거리 여행을 통해 길이 주는 의미를 매일 되새기고 있다.

방송국이 있는 바이나마르(Beinamar)로 가는 길은 아주 먼 길은 아니지만, 그 여정이 쉽지만은 않은 길이다. 푹푹 빠지는 모랫길, 냇물을 건너야 하는 길, 위험한 나무 둥치가 솟아난 길, 온통 먼지가 날리는 길을 지나야 한다.

모랫길에서는 절대 멈춰서는 안 된다. 자칫 멈추기라도 하면 모래 수렁에 바퀴가 빠져 영영 빠져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방법은 한 가지, 타이어의 공기를 빼는 것이다. 그러면 타이어와 모래의 닿는 면적이 넓어져 엔진의 힘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 때로 우리 인생길에도 모래 수렁에 빠질 때가 있다. 물 없는 마른 수렁에 빠져서 꼼짝 못할 때는 바람을 빼야 한다. 허풍이나, 허영심, 자기과신, 그리고 자기과시 같은 공기를 빼지 않으면 결코 그 모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없음을 깨닫는다. 가속페달을 힘껏 밟으면 밟을수록 바퀴는 더 깊이 빠져든다. 물 없는 모래수렁은 나에게 겸손을 요구한다. 정체 상태에 빠질 때 나를 돌아보고 내 속에 가득한 오만함의 공기를 빼내야 함을 가르쳐준다.

또 물 구덩이를 세 군데나 건너야 한다. 모래 수렁보다 더 위험하다. 물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보다 더 깊은 곳도 있고, 얕지만 바로 옆으로 깊은 수렁이 도사리고 있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 빠지면 남의 도움 없이는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다. 말 그대로 큰 낭패다. 방법은 먼저 건너간 사람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다. 내 소견을 내려놓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면 그 끝은 반드시 허무와 무의미로 끝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모랫길이든 물길이든, 한번 들어선 길에서는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 달려오던 탄력을 유지하여 계속 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한 번 멈춰서면 그것으로 더 이상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때가 많다. 잠깐 방심하거나 한눈을 팔다가 가속페달에서 발이 떨어지면 속도는 급격히 떨어지고 바퀴가 모래톱에 박히고 만다. 잠깐 멈춰서 주변을 감상하거나 자연을 만끽하는 일은 이러한 길을 벗어날 때까지 잠깐 보류해야만 한다. 모랫길에 들어선 그대, 멈추지 말고 계속 달려라.

먼지가 가득한 길에선 천천히 달릴 줄 알아야 한다. 에어컨을 켜고 문을 닫으면 차 안에 있는 나는 먼지로부터 안전하다. 그러나 내가 일으킨 먼지 때문에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 사람, 자동차를 탔어도 창문을 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시야는 가려지고 호흡은 힘들어 진다. 먼지는 안개보다도 더 시야를 가릴 수 있다. 그래서 밝은 대낮에도 반드시 전조등을 켜야만 한다. 여러 번 대형 사고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불빛 때문이었다. 나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이다. 인생길은 남을 배려할 줄 알 때 내가 안전하고 행복한 길임을 배우게 된다.
무엇보다 함께 동행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 길이 더욱 안전하고 행복하다.

보스턴의 한 보호소에 앤(Ann)이란 소녀가 있었다. 앤의 엄마는 죽었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아빠로 인한 마음의 상처에다 보호소에 함께 왔던 동생마저 죽자 앤은 충격으로 미쳤고 실명까지 하게 된다. 수시로 자살을 시도하고 괴성을 질렀다. 결국 앤은 회복 불능 판정을 받고 정신병동 지하 독방에 수용된다. 모든 치료를 포기했을 때 노(老) 간호사인 로라(Laura)가 앤을 돌보겠다고 자청한다. 로라는 정신과 치료보다는 그냥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날마다 과자를 들고 가서 책을 읽어주고 기도해주었다. 그렇게 한결같이 사랑을 쏟았지만 앤은 담벼락처럼 아무 말도 없었고, 앤은 가져다 준 특별한 음식도 먹지 않았다. 어느 날, 로라는 앤 앞에 놓아 준 접시에서 초콜릿 하나가 없어진 것을 발견한다. 용기를 얻은 로라는 계속 책을 읽어주고 기도해주었다. 앤은 독방 창살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에 조금씩 반응을 보이며 가끔 정신이 돌아온 사람처럼 얘기했고, 그 얘기의 빈도수도 점점 많아졌다. 마침내 2년 만에 앤은 정상인 판정을 받아 파킨스 시각장애아 학교에 입학했고, 밝은 웃음을 되찾았다.

그 후, 그토록 자신을 사랑해주고 옆에 있어준 로라가 죽는 시련을 겪기도 하였지만 앤은 로라가 남겨준 희망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으로 시련을 이겨내고 최우등생으로 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한 신문사의 도움으로 개안 수술에도 성공하게 된다.

수술 후 어느 날, 앤은 신문 광고를 보았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르쳐 줄 교사 구함’ 앤은 그 아이에게 자신이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로 결심한다. 사람들은 그런 아이는 절대 못 가르친다고 만류하였지만 앤은 말한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요.”

결국 사랑으로 그 아이를 20세기 대기적의 주인공으로 키워낸다. 그 아이가 바로 ‘헬렌 켈러’이고, 그 아이의 선생님이었던 ‘앤 설리반’(Ann Sullivan)의 이야기이다. 로라는 앤과 함께 있어주고 앤의 고통을 공감하면서 앤을 정상인으로 만들어 냈고, 앤도 헬렌과 48년 동안 함께 있어 주었다.
마음의 상처를 치료한 것은 상처에 대한 적절한 분석과 충고가 아니라 그냥 함께 있어 주는 것이다.
보혜사(保惠師)의 정확한 뜻은‘함께 있어 주는 분’이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

길의 위험과
바울이 십자가의 도를 전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친 인생길에서 만났던 숱한 위험 중 하나는 ‘길의 위험’이었다. 강도의 위험이 있는 외진 길이요, 파선의 위험이 있는 험한 바다길이요, 배고픔과 추위와 핍박과 죽음의 위협이 있는 험난한 길이었다. 그러나 그는 중간에 돌아서지 않았다. 뒤돌아 보지도 않았다. 이전에 걸었던 그 길이였지만 목적과 의미가 달랐다. 사울이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 때 그는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길을 걸었다. 그러나 그 길에서 예수님을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으로 만난 후 그의 길은 달라졌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마치기 위해 그의 달려갈 길을 쉬지 않고 달려갔다. 그 길 끝에 상 주시는 분이 그를 위해 예비한 썩지 않고 시들지 않은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주님은 왜 가장 먼저 자신을 길이라고 소개했을까? ‘생명’이 더욱 귀중한 것 아닐까? ‘내가 곧 생명이요, 진리요, 길’이라고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묻고 답을 찾는 묵상을 하며 다녀왔다. 원초적인 도로에 가까운 이곳을 달리게 될 때, 길이 얼마나 소중한지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된다. 생명은 하나님과 우리가 연결될 때만 가능하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기 때문이다. 우리와 하나님을 연결하는 길이 바로 예수님이다. 하늘을 향해 놓인 야곱의 사다리가 바로 예수님이다. 무지한 우리를 진리의 빛 가운데로 데려가는 길이 예수님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길을 내시는 분이다. 그의 아들이 길이다. 그의 영이 그 길의 동행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