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꽁꾼자 이야기

[사하라의 별빛 아래서]

동네마다 무거운 장비를 가지고 다니며 예수영화를 상영하며 복음을 전하는 사역은 낭만적이거나 편안한 일은 아니다. 오지 속으로 달려야 하기에 많은 위험이 있고, 밤에 이루어지는 사역이기에 불편함은 한 보따리가 넘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일시에 효과적으로 복음을 설명하고 전하는 사역도 드물 것이다. 특히 문명의 혜택에서 소외된 이곳에서 딱 맞는 사역인 것 같다. 글을 모르는 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적정사역인 셈이다. 누가복음을 기초로 만들어진 영화를 두 시간 보게 되면 복음서 중 하나를 읽게 되는 효과를 가지게 된다. 보여주고 들려주고, 말씀은 그렇게 그들 속으로 파고든다. 예수님은 그렇게 생생하게 그들 속에서 되살아난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문화적 특징 중 하나는 높은 수용성이다. 그들의 수용성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바다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빗물, 민물을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 들인다. 그리고 짠물로 만들어버린다. 주변의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삼켜서 자기 식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아프리카에 들어온 종교들은 모두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

흔히 아프리카의 기독교는 그 길이가 10km라면 그 깊이는 10cm에 불과하다는 말을 한다. 빠르게 성장한 기독교는 겉 무늬는 기독교지만 속은 아프리카의 토속종교의 모습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주술문화라고 말할 수 있다.
주술문화는 문화를 넘어 종교적인 색채가 진하다. 성인식은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성인식은 남녀가 다른 형태로 행해진다. 여자의 경우는 여성 할례의 형식으로 행해진다. 여성의 성기를 녹슨 면도칼이나 가위 심지어는 깨어진 유리병 조각으로 절단하는 끔찍한 방식으로 행해진다. 할례를 해야만 비로소 그 사회의 일원이 되며 한 여인으로서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행해지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무자비한 성적 폭력과 폭행이라고 할 수 있다.

늙은 산파가 성기를 자른 후 남은 부분을 실로 꿰매어 놓고, 남편 될 남자는 성기가 봉합된 ‘순결한 신부’를 취하는 대가로 장인에게 지참금을 지불하고 꿰맨 성기를 다시 칼로 잘라 성행위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일 할례를 받은 흔적이 없으면 음탕한 여자라 하여 비싼 지참금을 받고 결혼을 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딸을 시집 보내고 지참금을 받으려고 그런 무지한 일을 ‘전통’이라는 동굴 속에서 행하는 것이다.

남자들의 경우는 더 주술적이고 사단적이라 할 수 있다. 한 사내 아이가 태어나면서 자동으로 그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다. 이 성인식을 통해 그 사회의 가치관과 문화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할 때 그 사회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들이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가치체계는 미신을 넘어 사단적 요소가 가득하다. 남자는 죽은 조상과 사단에게 복을 받기 위해 제사를 지내야 한다. 이것을 거부하는 자는 겁쟁이, 배교자, 이단자로 낙인 찍혀 그 사회에서 살아가기 무척 힘들게 된다.

이 성인식을 집행하는 자는 전통적으로 주술사로 그 사회에서 기만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 사회에서 어둠의 통치자이다. 그들의 말은 절대적이어서 거부하는 자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벌과 저주가 뒤따른다. 이것이 두려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오늘날에도 그들의 노예가 되었다. 심지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그들의 영향력의 우산 아래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꽁꾼자(엄마 닭)’라는 재미있는 발음의 동네에서 있었던 일이다. 낮에는 목회자가 없는 교회에서 수고하는 평신도 지도자들을 모아 세미나를 하면서 밤에는 영화 상영을 통해 복음을 전하였다. 추장을 만나 허락을 받고 첫날 밤엔 예수 영화를 마을 한 가운데서 상영하였다. 제법 큰 마을이었다. 그러나 이전 마을들과 달리 회심자가 3명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의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왠지 싸한 분위기도 이상했다.

다음날엔 교회에서 〈délivrance’(해방, 자유)〉라는 영화를 상영한 후 집회를 가졌다. 이 영화는 차드에서 행해지는 성인식(Initiation)에 사단적인 요소가 너무 많아 계몽도 하고 복음도 전하기 위해 차드에서 만들어진 영화이다. 메가폰은 ‘메리’라는 미국인 여자 선교사가 잡았다.
그런데 영화 속 엑스트라가 바로 그 마을에 사는 교인이었다.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성인식’을 주관하는 2명의 주술사들이 그에게 찾아와 죽이겠다고 협박하며 저주했다. 이전 같으면 그들의 저주대로 그가 죽었고, 그들의 권위는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사람들은 더욱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들을 신처럼 따랐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그들이 시름시름 아프다가 한 사람이 죽고 말았다. 다른 한 명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다. 영화의 내용처럼 된 것이다.

놀라운 일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마을 추장은 무속신앙인이었다. 교인은 아니지만 마을의 대표로서 세미나 첫날 찾아와서 인사말을 해주었다. 사실은 전날 우리가 찾아가 인사하고 선물을 준 것에 대한 인사치레였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폐회예배에도 참석하여 감사의 말도 해주었다. 그때 그가 한 말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교회가 쓰러질 것 같아서 세미나 중 무너지면 어떡하나 많이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걸 보니, 하나님이 여러분을 지키시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교회 강대상이 있는 쪽 벽이 심하게 갈라지고 피사의 사탑보다 더 많이 기울어 있었다. 그래서 나무 기둥으로 받쳐놓았다. 그의 눈에 기독교는 그 교회처럼 의지할 수 없는 곧 무너질 것 같은 연약한 종교처럼 보였을 것이다.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추장이 다시 교회에 찾아왔다. 그리고 마을 전체의 이름으로 과거에 저지른 죄를 공개적으로 회개하며 용서를 빌었다. 아주 옛날, 그러니까 추장이 어렸을 때 Team선교회에서 선교사 한 가정을 이 마을에 파송했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이 선교사 가정을 추방하였다. 함께 온 현지인 동역자에게는 돌을 던지는 몹쓸 짓까지 하였다고 한다. 추장이 바로 이 일에 대해 용서를 구한 것이다. Team선교회 대표를 불러서 과거 그들의 조상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는 예배를 함께 드린 것이다. 눈물 바다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이렇게 놀랍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