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가시나무의 성장

[사하라의 별빛 아래서]

늦은 시간 시내로 나갈 일이 있었다. 한밤중에 숲을 지나게 되었다. 아직은 숲이라 부를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좋다. 
“야! 토끼다!”

나도 모르게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그런데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잠을 잘 수가 있을까? 새벽에 잠 깨어 세수하러 깊고 깊은 옹달샘에 왔다가 물만 먹고 가버린 그 정신 없는 토끼가 아직까지 자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거북이와 경주하다가 아직까지 잠들어 있었던 것일까? 거북이를 도와주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차를 멈추고 기다려야만 했다. 한참을 지켜보았다. 깊게 잠들었는지 시끄러운 엔진 소리와 대낮같이 환하게 비취는 자동차 전조등 불빛에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려서 볼까?”

그 순간 내 말을 듣기라도 한 듯 토끼는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잠에서 덜 깨어났는지, 아니면 너무 놀라서 그랬는지, 토끼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고 이리저리 갈팡질팡 헤매는 것이 아닌가. 한참 동안이나 요리조리 왔다 갔다 하는 그 모습이 너무 우스웠다. 귀엽기까지 했다. 그날도 그러지 않았을까? 토끼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느림보 거북이가 먼저 골인 점에 도착했던 그날, 거북이의 환호성에 뒤늦게 깨어난 토끼는 그렇게 비틀거리며 이리저리 꿈속을 헤맸겠지. 

우리가 사는 동네에는 아직은 이렇게 토끼가 살고 있는 숲이 남아 있다. 차드의 남쪽 지방이 아닌 곳에서 이런 숲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차드의 초대 대통령이 큰 뜻을 품고 심은 나무들이 자라 숲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숲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 집을 짓기 위해, 땔감을 얻기 위해 사람들이 나무들을 베어 가고 있다. 이제 이런 귀여운 토끼를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날도 그다지 오래지 않을 것 같아 못내 마음이 슬프다.

나무는 살아서는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다람쥐나 청설모들에게는 온 가족의 양식을 제공해주는 고마운 농장이 되어준다. 아이들에게는 놀이터가 되어 주기도 한다. 초록 잎새들 사이로 열린 파란 하늘을 바라보면 하늘색 꿈이 마음에 물드는 것 같다. 지친 나그네에게는 그늘을 만들어 주고, 나무는 편안한 등받이가 되어준다. 또 나무는 사색하는 자들에게는 인생을 가르쳐 준다. 꽃과 열매는 사람들에게 인생의 의미를 말해준다.

나무는 죽어서는 안락한 집이 되어 단란한 가정의 안식처가 되어준다. 피곤한 사람들을 편안하게 품어주는 침대가 되기도 하고, 지친 사람들의 몸을 안아주는 의자가 되어 주기도 한다. 허기진 이에게 따뜻한 밥을 지을 수 있도록, 추위에 떠는 이에게 따듯한 모닥불이 되어 주기도 한다. 종이가 되어 연인들의 사랑을 전하는 편지가 되기도 한다. 고마운 나무다.

그래서 난 나무가 좋다. 나무가 고맙다.

 

또 나무는 사람을 부르고
아브라함은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서 하나님을 규칙적으로 뵈었다. 그의 손자 야곱은 바로 이 나무 아래서 자기와 가족들의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땅에 묻어 장사 지냈다. 우상과 지극히 세속적인 것들을 버리고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돌아온 것이다.

모세는 불타는 떨기 나무 아래서 방황의 신을 벗고 사명의 신을 신었다. 드보라는 종려나무 아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애환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을 위로하고 말씀 앞에 바로 세웠다.

드보라는 ‘꿀벌’이라는 뜻이다. 꿀벌이 종려나무 아래서 열심히 꿀을 따고 있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가? 마치 여왕벌이 일벌들을 지휘하듯 그녀는 종려나무 아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도록 돕고 있었다(그녀는 사사 중 유일한 여자였다).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하던 엘리야에게 주님께서는 깊은 잠을 주시었다. 모든 것을 새롭게 보게 하려는 주님의 세심한 의도였던 같다. 여호와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지 않는가(시 127:2). 그리고 그의 지친 영혼을 어루만지셨다. 육신의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해 로뎀나무 아래에서 숯불을 피워 식탁을 베푸셨다. 주님께서는 두 번을 그렇게 하셨다.

무화과나무 아래서 말씀을 묵상하던 빌립은 예수님의 눈에 심겨졌다.

삭개오는 뽕나무 위에서 새로운 삶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뽕나무 사건 이후로 그는 더 이상 ‘키 작은 삭개오’가 아니었다. 나무 위에서 그는 하나님 나라의 거인으로 태어날 준비를 한 것이다. 부자가 들어가기엔 그토록 어렵다는 천국의 바늘구멍을 당당히 통과했다. 그는 평생을 걸쳐 모은 돈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흩뿌리며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을 심는 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갈보리 예수님의 나무 십자가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들의 노래가 되었다. 


나무를 심으며, 생각하며
숲이 가까운 곳에 살지만, 정작 우리가 집을 짓고 학교를 지은 곳은 나무가 없어 휑했다. 그곳에 나무를 심고 키우기 위해 여러 해 동안 전쟁을 해야 했다. 어린 나무는 염소와 양들이 먹어치웠다. 염소와 양들의 무자비한 공격에 겨우 살아 남은 나무들은 소떼가 와서 먹어 치웠다. 그 다음엔 낙타 차례였다. 지나가는 모든 것은 나무를 자르고 할퀴고 뽑았다. 허허벌판에 불어온 바람이 그렇게 했고, 심술궂은 동네 꼬마녀석들도 괜히 나무의 팔을 잘라버렸다. 그렇게 쓰러진 나무들을 바라보며 또 좌절은 얼마나 했던가?

나무 심는 일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나무마다 제각기 다른 특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빠빠야 나무는 아주 잘 자란다. 일 년 만에 수컷은 5미터 정도로 쑥쑥 자란다. 열매도 바로 맺는다. 그러나 속이 비어서 비바람에 약하다. 버팀목에 기대거나 다른 나무들 속에서나 안전할 수 있다. 빠빠야 나무는 언제나 주인의 세심한 배려를 요청하는 것 같다.

반면에 레몬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아주 느리게 자란다. 그래서 언뜻 보면 거의 자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벌써 심은 지 5년이 되었어도 열매를 찾을 수 없다. 가시가 있어 그 누구도 쉽게 접근할 수도 없다. 장미처럼 아름다운 꽃이나 향을 가졌다면 그 가시마저도 아름답겠지만, 그에겐 아직 그럴만한 그 무엇이 없다. 강력한 향은 사람에게는 좋지만 동물들은 싫어하는 것 같다. 혼자서도 비바람을 잘도 견딘다. 그래서 때론 거만해 보이기까지 하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빠빠야 나무보다는 이 작은 레몬 나무를 더 닮은 것 같다. 성장도 더디고, 그래서 열매도 더디고, 가시가 있어 남들이 쉽게 다가올 수 없는 나무, 의지하고 기대기보다는 독불 장군처럼 혼자 하려는 이기적인 성향의 가시나무다.

가시나무 사랑
그런데 가시나무가 하나님의 관심이 많은 나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가시나무가 바로 하나님께서 성막의 기구들을 만들기 위해 선택하신 나무이다. 왜 백향목이나 삼나무가 아닌 가시나무를 선택하신 것일까? 당시의 건축가들은 성전이나 궁전을 짓기 위해 백향목을 선택하였다. 과연 가시나무가 하늘과 땅의 왕이신 하나님의 집에 합당하단 말인가? 사막의 뜨거운 모래 바람 속에서 자란 싯딤나무는 자라면서 휘어지고 볼품없는 비루한 나무가 된다. 또 이 나무는 자신을 다루는 목수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을까? 가시는 쉬지 않고 찌르고 우툴두툴한 껍질과 마디와 옹이들은 끊임없이 그의 손에 물집과 상처를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우리의 본성은 휘어지고 난폭하고 까다롭고 가시가 돋쳤다. 이러한 가시 나무가 부지런하고 인내심 많은 목수의 손에서 잘리고 깎이고 다듬어지고 매끄럽게 되고 금으로 덮여서 하늘과 땅의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도구들이 되었다. 또 이렇게 다듬어진 수많은 가시나무 널빤지들이 서로 어깨를 마주하고 연결되어 성막의 벽을 이루고 하나님의 집이 되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엡 2:21)

이것은 다른 형태의 성장인 것이다. 이전엔 세상 속에서 자랐다면 이젠 하나님의 손에서 자라는 것이다. 이것을 성숙함으로의 빚어짐, 성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손에서 자라나기 위해서는 먼저 뽑혀야만 한다(갈 1:4).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 교회의 일부가 되도록 부름 받은 우리는 이 세대의 정신과 이 세상의 생각으로부터 뽑혀야 한다(롬 12:1). 반드시 먼저 뽑혀야 한다. 그래야 다듬어지고 아름답게 되어 금으로 덮일 수 있는 것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

자라고 싶은 나무
나무가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땅에 떨어져 또 다른 나무가 되고 또 자라 숲이 되고 친구가 되고. 나의 삶이 이런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신선한 공기를 내뿜는 사람들의 숲을 마음 속에 그려 본다. 그런 숲에 나도 한 그루의 아름드리 나무가 되고 싶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그것을 나누고, 땅에 떨어진 열매들은 또 다른 나무가 되고 숲이 되고. 그렇게 세상을 푸르게 덮어가는 숲이 되었으면 좋겠다. 
성장하지 않으면 꽃도 열매도 아니 그늘조차도 만들 수 없는 나무의 운명을 본다. 세상의 가시나무로 남아있지 않고 하나님의 숲에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고 싶다. 성장하지 않으면 비루하고 볼품없는 인생이 된다. 찌르고 아프게 하는 가시나무로 그렇게 광야의 비바람을 홀로 맞아야 한다.

‘아담’(사람이란 뜻)과 ‘하와’(사람을 돕는 자)에 의해 에덴 동산에 문이 닫히지 않았다면 지금쯤, 아니 훨씬 오래 전에 지구는 온통 에덴동산이 되었을 것이다. 동산의 나무들이 울타리를 넘어 지구 한 모퉁이에 있던 에덴 동산을 지구별 전체에 가득하게 했으리라. 
이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온 땅과 온 세상이 복음의 푸르른 숲이 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예수님은 잃어버린 동산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다시 가꾸기 시작하셨다. 우리 마음에 한 그루의 생명나무를 심어 주신 것이다. 그 나무를 잘 가꾸어 마음을 숲으로 만든 사람도 있고, 여전히 자라지 않는 한 그루의 가시나무만 남아 있는 광야도 있을 것이다. 


* 차드에는 싯딤(가시)나무가 많다. 이곳이 메마른 광야라는 의미이다. 광야라 살아가는 것이 힘들지만 여기에 있기에 성경의 내용을 더 풍성히 읽을 수 있는 은혜도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