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하는 모세(출 4:10-17)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모세는 자신이 언변이 없다고 변명하며 여전히 여호와께 순종하기를 주저했다. 그는 자신을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라고 말한다.

'뻣뻣하고', '둔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모두 '카베드(כּבד)'로서 '무겁다', '느리다'는 뜻이다(KJV, RSV-slow). 유대 전승에 의하면 실제로 모세는 순음(脣音, d, v, m, ph, p) 발음에 서툴러 말을 매우 느리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굳이 모세를 어눌(語訥)한 자로 볼 필요는 없다. 아마 그는 어느 정도 말에는 능하였으되(행 7:22), 뛰어난 능변가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모세는 대국의 왕 바로를 설득시키고, 완고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내기 위해서는 특출한 달변과 사자후(獅子吼)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말에 능치 못한자'는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말의 사람이 아니다'가 된다. 즉 자신의 의사를 자유자재로 표현할 줄 모른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여기 '말'은 단순히 연설이라는 측면 외에 '꾀'나 '능력', '모략'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철저히 인간위주의 생각이다. 실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다(고전 4:20). 자신의 부족한 점을 부각시키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주저하며 뒤로 물러서는 모세를 향해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입을 지으신 이가 누구인지 모세에게 묻는다. 이는 '내가 바로...창조주가 아니냐'는 반문을 이끌어내는 말로 사용되었다(롬9:21).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말못하는 자도 말하게 하시며, 심지어 나귀도 사람의 말을 하게 하시는 분이다.

그러나 모세는 여전히 "보낼만한 자를 보내라"라고 말하며 순종하지 않는다. 모세는 이전까지 네번(3:11,13;4:1,10)에 걸쳐 사양의 뜻을 표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때마다 해결책을 제시하셨다. 그러나 다섯번째도 거절하자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진노하시며 그에게 또다른 해결책으로서 그의 형 아론을 대변자로 삼으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어떠한 경우에서라도(심지어 당신의 백성이 믿음이 없어 당신을 화내게 만드는 경우에도) 당신의 뜻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어이 성취하고야 마신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함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언변 있게 하실 수 있음을 상기시켜준 다음에 모세 대신 말하도록 그의 형 아론을 세웠다고 말해준다.

아론은 '고상(高尙)하다'는 뜻을 지닌 이름이다. 아므람과 요게벳의 첫째 아들로서 동생 모세보다 3년 연상이다(6:16-20).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는 '레위 사람'이다. 이 말 속에는 장차 그의 후손들이 담당하게 될 투수한 임무, 곧 성막 봉사의 의미까지 내포되어 있는 말이다(플핏 주석)

모세와 아론의 역할은,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계시의 핵심을 전해주면 아론이 그 메시지를 능력있게 백성들과 바로에게 전하는 방식이었다. 하나님은 이 관계를 '모세가 아론에 대하여 하나님 같이 되는' 관계와 역할이라고 표현하신다(출 4:16). 이는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라'는 말씀(7:1)과 그 뜻이 같은 구절이다. 즉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계시의 말씀을 받은 말씀의 소유자임과 아울러 아론에게 그 말씀을 전달해야 하는 중개자(仲介者)이므로 아론에게는 모세가 마치 하나님과 같은 권위를 지니게 된다는 뜻이다. 한편 이와 관련하여 루터(M.Luther)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지혜, 능력 등을 모두 소유하는 특권을 누린다고 갈파하였다.


모세는 여호와의 명령이 곧 그분의 능력임을 알고 단순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마땅히 순종해야 했다. 하나님은 결코 행할 능력을 주지 않은 채 우리에게 어떤 일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모세는 하나님의 최선에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차선, 즉 아론을 그의 대변자로 두는 쪽을 취해야 했다. 모세는 아론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후에 아론은 백성들로 금송아지를 숭배하도록 잘못 인도함으로써 장애물로 입증되었다(출 3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