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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산책

[가상칠언]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1)

by 😘 소소한행복^^ 2020.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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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봉독: 눅 23.33-38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철든다더니 곧 죽을려나....
죽음은 사람을 진지하게 만든다. 그래서 유언은 그 어떤 말보다도 무겁게 여겨진다.

예수님도 운명하실 때 유언 같은 말씀을 하셨다. 십자가에서 마지막 하신 말씀은 4복음서에 의하면 모두 7마디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말씀을 가상칠언이라 부른다.

이 가상칠언이 중요한 이유는, 예수께서 운명직전에 자신의 심중을 기탄 없이 드러냈다는 점이다. 이 말들은 예수의 성품이 지니셨던 위대한 힘과 아름다움을 드러내 줍니다. 예수께서 당했던 정신적 및 신체적 고통이 어떠하였는지를 잘 말해 준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왜 이 땅에 오셨고 왜 죽으셨는지를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예수는 아래와 같은 순서로 말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1) 중재의 기도(눅23:34)
(2) 도적의 기도에 대한 응답(23:43).
(3) 자신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들에 대한 말씀(요19:2627)
(4) 영적인 고립감에 대한 외침(마27:46,막15:34)
(5) 육체적 고통에 대한 시인(요19:28)
(6) 승리의 선포(19:30)
(7)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가득 찬 위탁 (눅 23:46).


십자가에서 처음하신 말씀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 23: 34)

•첫 말씀, 그것은 기도였다
십자가상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기도였습니다. 설교도 원망이나 저주가 담긴 욕설도 아니었습니다. 자기비하의 독백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기도였다.

★우리의 첫 반응은 기도여야 한다. 모든 일의 시작이 기도여야 한다.
니헤미야는 예루살렘이 황폐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감을 느끼고 금식하며 기도하였다. 왕의 술맡은 관원장으로 항상 왕의 얼굴을 대면해야 하는 자의 위치에서 금식한다는 것은 자칫하면 자신의 직책을 박탈을 당하거나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는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금식하며 기도했다.
식사 시간이 되어 왕과 가까이에서 대면했다. 왕은 그의 얼굴이 평상시와는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아챘다.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왕의 질문에 답하기 전에 그는 마음속으로 아주 짧은 시간 묵상으로 기도했다. 그의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평소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그 순간에 기도할 수 없다. 우리도 이렇게 해야한다.

배반과 핍박 앞에 우리의 첫 반응도 기도여야 한다. 저주의 기도가 아닌 용서의 기도를 해야한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마 5:44-45)

기도가 가장 앞서야 한다. 말보다 행동보다 앞서야할 것은 기도다. 사람보다 세상보다 우리가 먼저 찾고 구해야할 것은 하나님의 얼굴이다. 특히 우리가 곤경에 처할 때 가장 먼저해야 할 일은 기도이다. 느헤미야가 평소 기도의 사람이었기 그 짧은 순간에 기도할 수 있었다. 그는 기도가 습관화 되었다. 그의 삶의 우선순위 그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찌로다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찌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찌어다."(시 105:3-4)


세상을 향한 기도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시는 동안 드리신 기도내용은 성경에 여러차례 기록되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주기도문이다. 또 하나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실 때 제자들을 위해 하신 중보의 기도였다. 성서학자들은 그 기도를 제사장의 기도라고 부른다. 요한복음에는 이 기도의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내 기도는 이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모두 하나가 되게 하시고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소서.
...
그것은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17:20-23)

위의 기도는 제자들을 위해 하신 기도로 이러한 내용의 기도는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당연한 기도일 수 있다. 자식 같은 이들을 위해 안쓰럽고 사랑스러워 이렇게 기도할 수 있었다.

반면 십자가상에서 첫 말씀이자 기도는 세상을 향한 기도이다.

자신을 구주로 거부할 뿐 아니라 조롱하고 대적하는 이들을 위한 기도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출입하며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행하신 일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악한 행동이었다.
예루살렘에 압성할 땐, "호산나... 왕리시여!" ,뢰치던 그들이 빌라도의 법정에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바라바를 돌려달라"고 녹청높여 외쳤던 그들이었다.

뱀의 혀처럼 갈라진 혀를 군중은 가졌다.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예수님을 필요할 땐 끌어당기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들이었다.

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예수님께 침 뱉고 뺨을 때리고 발가벗기고 비아냥거렸다. 바로, 그들을 위해서도 예수님은 기도하셨다.

제자들을 위해서도, 끝까지 울면서 십자가 밑에까지 동행한 여인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시지 않으셨다. 원수를 위해 용서를 구하고 계신 것이다.

우리도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들을 향한 우리의 첫번째 반응은 기도여야 한다. 또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성품이 담겨진 그릇이 되어야 한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미 7:18)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의 성품이 가득하길 축복한다.


• 타협할 수 없는 기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첫번째 말씀은 가혹한 시련 속에서도 그 자신의 윤리 규준(마5:44)을 완전히 실증하였음을 보여 준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마 5:44-45).


•탓하지 않고 담당하심
흉악한 죄인 바라바를 선택한 유대인들, 그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푼 예수님을 배신한 이들에게 예수님의 눈길은 한 없이 자비로웠다.

세번 모른다고 맹세와 저주까지 했던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눈길은 따뜻했다. 모두가 추워 모닥불을 피웠고 주변에서 몸을 녹이고 있었지만 베드로 비 겁한 마음을 녹인 것은 예수님의 따뜻한 눈길 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전가하려는 죄성을 가졌다.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결국은 그 끝은 하나님이다.

그러나 예수님 덮어주고 변호해주신다. 자신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신다. 속죄제를 드릴 때 당사자는 동물의 머리 에 손을 얹었다. 자신의 죄를 동물에게 전가시켰다.


•참된 변화, 영향력은 기도가 만든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허신 7마디 말씀 중 그 첫 말씀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사람들을 향한 기도였다는 것은 우리에게 가르치는 교훈이 크고도 ㅣㅍ다.

십자가상에서 드린 예수님의 기도는 허공을 울리는 공허한 공기의 떨림이 아니었다. 메아리처럼 자신에게 다시 되돌아오는 공기의 진동이 아니었다. 스데반이 그 현장에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예수님이후 초최의 순교자였던 스데반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예수님의 죽음의 장면과 유사점이 많다. 특히 그가 마지막 순간에 드린 기도는 더욱 그렇다.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7:59-60

우리가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말씀과 동일하다. 그 대상만 하나님에서 예수님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예수님의 기도를 그대로 재현하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누가는 스데반이 이렇게 기도할 때 그 기도를 듣고 있는 한 젊은이를 소개한다.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앞에 두니라"(행 7:59-60)

스데반의 기도는 핍박자 사울이 위대한 사도 바울이 되는 첫 영향력이 되었다.


그 어떤 것들보다도 더 중요하고 강력한 영향력의 요소를 더하고 싶다. 그것은 중보기도다. 하나님의 성품이 담겨진 중보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 그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지금도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중보자들을 찾고 있다. 그들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이 시대를 바꿔가시며 사람들을 변화시켜 가신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성품을 담은 거룩한 영향력이 되길 축복한다. 아멘.


•} 기도:
나의하나님,
우리의 첫 반응이 기도가 되게 하소서.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성품이 담긴 기도가 되게 하옵소서. 원망이 아닌 용서를 담기길 원합니다. 저주가 아닌 축복이 담겨지게 하옵소서. 사랑과 칭찬이 담겨지게 하옵소서.

그럴 때 우리의 기도는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방관자가 순교자가 될 것입니다. 핍박자도 사도로 바뀔 것입니다. 세상에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는 기도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기도가 사람들의 속사람을 바꾸는 하나님의 방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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