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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산책

법궤가 블레셋에서 옮겨진 경로

by 😘 소소한행복^^ 2020.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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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시며 이래 계속 실로(Shiloh)에 있었던 법궤는 마침내 엘리 제사장 시대에 이르러 옮겨졌다. 즉 엘리의 두 아들의 주관하에 법궤는 실로로부터 에벤에셀(Ebenezer)과 아벡(Aphek)사이의 전쟁터로 이동되었다(4:4, 5). 그러나 이 싸움에서 패배한 이스라엘은 블레셋 족속에게 범궤를 빼앗겼다(4:11).


블레셋...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 '하나님의 궤'(the Ark of God)는 블레셋 족속에게는 자신들의 역사 이래 최대의 전리품임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블레셋 족속이 아벡 전투에서 하나님의 궤를 탈취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담대하게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자신들의 처음 염려(4:6-8)와는 달리 그 궤가 어떤 능력을 나타내지 않음으로써, 그들이 그 궤로 인한 공포에서 벗어났기 때문인 듯하다.

법궤의 이동 경로는 다음과 같다.


1) 아스돗(Ashdod)
법궤를 빼앗은 블레셋 족속은 처음 그것을 아스돗(Ashdod)으로 가져갔다. 아스돗은 '진'(陳)이란 뜻으로 가사 북쪽,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블레셋의 주요 교통 관문이다. 아스돗은 원래 여호수아에 의해 유다 지파에게 분배되긴 하였으나(수 15:47) 그 지파에 의해 정복되지는 못했다. 이 도시는 강대국 애굽과의 교역을 위한 근거지였고, 또한 애굽으로 통하는 관문이라는 점에서 블레셋의 도시 중 중요하게 여겨졌다. 신약 시대에는 '아소도'란 명칭으로 불리웠다(행 8:40).

블레셋 족속이 아벡 전투에서 탈취한 여호와의 궤를 자신들의 '다곤의 신당' 에 가지고 들어가 그 곁에 놓은 것은 (1) 자신들에게 승리를 가져다 준 다곤 신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며, (2)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다곤 신의 우월성을 나타내려는 상징적 행위 등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이곳 신전(神殿)에 모셔진 자신들의 다곤(Dagon) 신에게 그 궤를 일종의 예물로서 바치기 위함이었다.


다곤은 고대로부터 이 우상은 메소보다미아, 앗수르, 베니게 지역 등지에서 널리 숭배되어 온 우상인데, 블레셋 족속은 이 우상을 베니게 족속들에게서 수입하여 자신들의 민족 수호신(民族守護神)으로 삼은 듯하다. 그것은 이 우상을 섬기는 신전이 '아스돗' 뿐만 아니라 '가사'(삿 16:23) 등 블레셋의 주요 성읍 여러 곳에 세워진 사실로 미루어 보아 분명해진다. 한편 이 다곤 의 어원(語源)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상호 이견이 있는데, 크게 다음 두 가지 견해로 대별될 수 있다. 즉 (1) '다곤'을 '물고기'란 뜻을 지닌 '다그' 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보고, 곧 '다곤(Dagon) 신'은 '물'과 '물고기'를 토템(Totem)으로 한 신으로서, 자연의 활력 및 무수한 번식력을 상징하는 '풍요의 해양신'으로 보는 견해, (2) '다곤'을 '곡식', '곡물'이란 뜻을 지닌 '다간' 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보고, 곧 '다곤(Dagon) 신'을 땅의 비옥과 땅의 열매를 상징하는 '풍요의 농경신'으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 그런데 다곤 신의 모습으로 추정되는 바, 레이야드(Layard)에 의해 콜사밧(Khorsabad)에서 출토된 양각(陽刻) 조각품의 그림에 따르면, 몸의 상반신은 수염이 있는 남자의 모습으로 왕관을 머리에 쓴 형상이고, 몸의 하반신은 물고기의 형상으로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은 전자의 견해대로 다곤 신이 '물' 또는 '물고기와 밀접히 관련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그러나 마리(Mari), 우가릿(Ugarit) 등지에서 발견된 고대 문헌을 살펴보면 블레셋 족속은 분명 이 우상을 곡식의 풍작을 위하여 숭배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후자의 견해가 더 타당하다. 결론적으로 블레셋 족속은 이 다곤 신에 해양 민족의 특성을 가미시키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가나안의 농경신의 영향을 받아 이 우상을 '곡식의 풍작을 위해' 숭배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특히 우가릿(북부 가나안) 문헌(Ugaritic Texts)에 나타난 바, 다곤 신이 가나안의 농경신인 바알 신의 아버지로 기록된 사실은 이러한 점을 보다 분명히 뒷받침해 준다(삿 16:23 참조).


'다곤 신당'(Dagon's Temple)은 블레셋 지역에서는 발굴되지 않았으나, 고대 우가릿(Ugarit, 북부 가나안) 지역에서는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어 우리 에게 다곤 신전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정보를 제공해 준다. 즉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그 신당(新黨)은 제단이 있어서 종묘적 의식이 집행되는 개방된 마당 가운데 위치했다. 그 마당에서 그 신당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계단으로 올라 가야 했다. 그런데 그 신당은 마치 성막의 경우처럼 성소와 그것의 뒤에 위치한 지성소로 구성되었다. 또한 그 지성소의 중앙부분에 단이 만들어져 있었고, 그 단 위에 제단과 신상이 배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한편 블레셋 족속이 원래 해양(海洋)민족이면서도 이처럼 중근동지방의 우상을 섬기고 있었던 것은, 그들이 가나안으로 이주한 후 그 지역의 여러 관습 및 전통을 그대로 받아들였음을 보여 준다.


2) 가드(Gath)
가드는 구(舊) 가나안의 도시였으나, 여호수아에 의해 멸망되었다(수 10:36-39;11:21, 22). 그때 그 도시의 주민들은 아낙 자손(the Anakims)이라고 불리던 자들로서, 신체가 장대했던 자들이었다(민 13:33). 그러나 여호수아 정복 후에도 그들의 일부는 여전히 살아남았는데, 성경에서는 '가드 사람'(the Gittite) 불리워 졌다(삼하 6:10, 11;15:18, 19, 22). 한편 이 도시는 아스돗(Ashdod) 동쪽 약 20km지점에 위치하였고, 성벽이 잘 갖춰져 있던 특별히 중요시되던 지역이었던 것 같다(수 11 :22;13:3 참조). 오늘날 '텔 엘 사피'(Tell el-Sahfi)로 추정된다.



3) 에그론(Ekron)
지증해 연안에서 동쪽으로 약 14km, 아스돗 북동쪽 약 20km 지점에 위치한 블레셋의 주요 다섯 성읍 중 하나이다(8절). 이 성읍은 여호수아에 의해 유다 지파에게 할당되 었으나, 그의 생전에는 점령되지 못했었다(수 13:3;15:11, 45, 46). 그 후 이 성읍이 유다 지파에 의혜 정복되긴 하였지만(삿 1:18), 얼마 안가서 블레셋의 지배 아래 떨어진 이후 유대 민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때까지 그같은 상황은 계속된 듯하다(렘 25:20). 특히 이 도시에서는 '바알세붑'(Baalzebub)이라는 신이 모셔지고 있었다(왕하 1 :2, 3, 6, 16; 수 13: 3 참조). 이처럼 이 도시에서 '다곤'(Dagon) 신이 모셔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이 도시로 보내려고 한 중요한 이유였던 것 같다.

에그론(Ekron) 거민들이 여호와의 궤를 자신들의 성읍 내로 들여놓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거절했다. 이미 그들도 그 궤 때문에 아스돗과 가드에 임한 큰 환난 소식을 익히 듣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블레셋 모든 방백들은 궤를 이스라엘로 돌려 보내기로 결정한다. '궤를 보내는 일'은 블레셋 족속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하여 취한 방책이었다. 만일 블레셋 족속들이 언약궤를 자신들의 또 다른 도시로 보낸다 해도, 옮겨진 그 도시 역시 앞의 다른 도시들처럼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받을 것이 뻔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언약궤가 원래 보관되었던 이스라엘로 돌려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블레셋 족속은 많은 재앙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블레셋 방백들은 법궤를 이스라엘로 되돌려 보내지 않을 수 없었고, 숙의(熟議) 결과 암소 두 마리가 모는 수레에 법궤를 싣고 이스라엘 땅의 벧세메스로 돌려보내게 되었다(5:11-6:15).


*새 수레를 만들고 - '새 수레'(a new cart)는 한 번도 세속적(世俗的) 목적을 위하여 사용된 적이 없는 수레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같은 수레는 존재치 않았을 것이므로 블레셋의 제사장들은 그것을 새로 만들 수 밖에 없었다. 한편 블레셋 제사장들이 이처럼 법궤를 새 수레에 실어 보내고자 한 이유는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고, 그에게 경외심을 보이고자 했기 때문이다.


*멍에 메어 보지 아니한...소 둘 - 이것 또한 세속적 목적을 위해서 전혀 사용되지아니한 소를 가리킨다(민 19:2). 모세 율법에서도 정결 의식에 필요한 희생 제물은 이같은 조건에 부응해야 한다고 언급되어 있다(신 21 :3).


*젖 나는 소 둘 즉, 새끼가 딸린 암소를 가리킨다. 그러면 블레셋 사람들이 법궤를운반할 짐승으로 이같은 암소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블레셋 제사장들에게 있어 주된 관심사 중의 하나는 자신들의 족속들에게 내려진 재앙이 어디서 말미암았는가하는 문제였다. 즉 그들은 그 재앙의 근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부터인지 아니면 다만 우연인지를 궁금해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관련하여 9절에서 블레셋 제사장들은 재앙의 근원이 하나님인지 아니면 우연인지를 분간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세워놓고 있다. 즉 그들은 그 수레의 진행 방향을 보아 그 재앙의 근원을 규명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새끼가 딸리지 않은 암소를 사용한다면, 그 암소가 목적지를 향해 곧장 간다고 하더라도, 그 암소는 다만 본능대로 길을 따라 간 것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에 새끼가 딸린 암소를 사용할 경우, 그 암소가 새끼를 개의치 않고 그렇게 곧장 간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절대적 섭리가 개입됐다고 단정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같은 사실 때문에 블레셋 제사장들은 새끼가 있어 그것들에게 젖을 물리는 암소를 법궤 운반용으로 택했던 것이다.금 보물은...궤 곁에 두고 - 블레셋 제사장들이 이같이 한 이유는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블레셋 족속에게 재앙이 생겼을 것으로 생각하여, 그 예물로써 여호와의 꿰를 달래보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블레셋 제사장들은 자신들에게 임한 재앙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확실히 규명하기 위하여(9절) 어미 암소를 젖먹이 송아지들로부터 격리시키기위해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었다.

암소가 가며 울었으나 뒤돌아보지 않고 좌우로 치우치지지도 않고 벧세메스로 나아갔다. 따라서 이것은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들이, 새끼 송아지에게 모성적(母性的) 본능이 이끌리면서도 하나님의 강권 하시는 손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갔다. 이같은 사실은 블레셋의 제사장들이 스스로 기준을 세 운 바(9절)와 같이, 블레셋에게 임한 재앙이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았음을 명확히 보여 준다. 그리고 대대로(문자적으로는 '단 하나의 큰 길로'(along one highway, RSV)의 뜻) 갔다. 결국 이것은 암소들이 가장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지름길로 행했음을 암시해 준다.

이처럼 (1) 한 번도 멍에를 메어보지 못한 소들이 수레를 이끌고 조용히 앞으로 나아갔다는 점과, (2) 더군다나 젖 빨리는 새끼 송아지들을 둔 상태에서 좌우로 치우침 없이 곧장 갔다는 점은 분명 이 소들이 하나님의 강하신 능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였다는 사실을 충분히 일깨워 준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천상 천하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을 당신의 뜻대로 주관하시는 만유의 주인 이시다.


4) 벧세메스(Bethshemesh)
벧세메스는 '태양의 집'이라는 뜻. 이 지역이 갖고 있는 이러한 의미는 일찍이 이곳이 가나안인들에 의하여 태양신이 숭배되던 곳임을암시해 준다. 당시 이곳은 예루살렘 서쪽 약 22km지점에 위치하였고, 블레셋 땅으로 연결되는 동서 골짜기에 있었으며, 제사장의 성읍으로 지정된 유다 지파의 땅이었다(수 21 :13-16). 한편 블레셋인들이 언약궤를 이곳으로 보내려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언약궤가 원래 보관되어 있던 실로는 당시 블레셋 족속들에 의하여 심하게 파괴되었고(4:10 주석 참조). (2) 벧세메스는 언약궤로 인해 마지마긍로 재앙을 당한 블레셋 도시 에그론과 제일 가까운 이스라엘의 성읍이며, (3) 벧세메스는 언약궤를 관리할 수 있는 제사장들이 거주하는 곳이기 때문인 듯하다(수 21:16).


벧세메스 사람들이 법궤를 보고 기뻐 하였다. 여호와의 법궤를 빼앗긴 일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던 만큼, 법궤의 귀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특히 제사장의 성읍(수 21 :13-15)인 벧세메스 사람들에게 있어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기쁜 소식이었을 것이다.

수레가 여호수아의 밭에 이르러 멈춰 선다. 수레를 끄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레가 이스라엘 땅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까지 와서 딱 멈춰 선 것은 블레셋에 대한 재앙이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내려졌음을 분명히 시사해 준다(9절). 그리고 여기서 '여호수아의 밭'은 언약궤가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서 이스라엘 땅으로 분명히 옮겨졌음을 강력히 시사하려는 저자의 의도에 따라 언급되었다. 비록 여기의 '여호수아'가 구체적으로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가나안 땅 정복의 위대한 지도자인 눈의 아들 여호수(Joshua)와 동일한 이름의 소유자였던 그 사람의 밭에 하나님께서 수레를 멈춰 세우신 데는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소를 번제로 여호와께 드렸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지성물(至誠物), 곧 법궤를 운반했던 수레는 절대로 다른 세속적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없고, 다만 번제를 위한 땔감으로만 사용될 수 있다는 벧세메스 사람들의 공통된 인식에 따라 행해졌을 것이다.

헌편, 번제물은 반드시 수컷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레 1: 3-13>, 여기서 암컷을 번제로 드린 것은 특별히 이 소들은 성물을 운반하여 다시는 세속적 목적으로 사용될 수 없었던 특별한 사정 때문이었다. 아울러 이곳 벧세메스의 희생 제사는 반드시 중앙 성소에서 제사를 드리라는 여호와의 명령(신 12:5-7, 11-14)에 심히 위반되는 제사는 아니었다(Keil). 왜냐하면 비록 이 희생 제사가 실로(Shiloh)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행해졌지만 (1) 실로가 완전한 중앙 성소로서 하나님에 의해 지정된 곳이 아닐 뿐 아니라, 당시는 블레셋 족속에 의해 심하게 파괴된 상태였고 (2) 또한 무엇보다 그 때에 벧세메스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놓여져 있었으며, (3) 그리고 그 제사가 레위인 제사장들에 의하여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집행됐고(15절), (4) 저자도 그 제사를 잘못된 일로 언급치 않고 있다는 점에서 별 문제가 없는 것이다. 한편 벧세메스 사람들은 이와 같은 제사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법궤를 다시 돌려 보내주신 데 대하여 감사하였고, 이스라엘의 영광이 다시 돌아오게 되었음을 기뻐하였다<13절>.


그런데 벧세메스에서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보는 큰 죄를 범한다.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보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범하는 일이기 때문에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민 4:5, 6, 15-20). 그럼에도 불 구하고 벧세메스 사람들이 그것의 내부를 들여다 본 것은 사악한 세속적 호기심 때문이었으며, 그 같은 호기심은 결국 하나님을 만홀히 여긴 결과였다(갈 6:7).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 궤를 전리품 취급한 블레셋을 정벌하셨듯이(5:1, 2), 그 궤를 단순히 세속적 구경거리로 삼은 벧세메스 사람들도 엄히 정벌하신 것이다.

이일로 (오만)칠십 인이 죽임을 당한다. 여기서 '오만'이라는 숫자는 필사자의 실수에서 기인한 듯하다. 즉 숫자 표기를 종종 상이한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내는 고대의 숫자 표기 방식에 따라 '칠십명'을 달리 설명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생겨 '오만'이라는 말이 삽입된 것 같다. 어쩌면 '아인'을 '눈'으로 잘못 보았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후일 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의 인구가 최고로 번성했을 때에도 7만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여기의 '오만 칠십 인'은 그냥 '칠십 인'으로 봄이 타당하다. 이런 점에서 유대의 역사가 요세 푸스의 기록도 '칠십 인'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히브리 여러 사본들 에서도 '오만'이란 숫자는 빠져 있다.

하나님의 징계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벧세메스 사람 '칠십 인'은 한 가정의 가장(家長) 등 중요한 위치에 있던 인물들이었을 것이므로, 그 두려운 사건은 각 지역 주민들에게 큰 충격이 되고도 남았다. 그러나 이러한 징계를 통해 모든 사람들은 그 누구도 범할 수 없는 '여호와의 거룩성'을 깊이 깨달아야만 했다.

법궤를 경솔히 돌여다 본 범죄의 대가로 하나님께로부터 엄청난 징계를 받은 벧세메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전과 같은 징계가 또 내려질까 두려워한 나머지 그 궤를 다른 지역으로 보내려 했다. 따라서 이것은 벧세메스 사람들이 자신들이 징계를 당한 분명한 이유를 모르고 있었으며, 또한 그들에게 언약궤와 관련하여 미신적 신앙이 다분히 있었음을 보여준다(4:3;5: 8)


5) 기럇여아림(Kiriath-jearin)
이후 법궤는 곧 기럇여아림 땅의 엘리아 살의 집으로 옮겨지게 되었는데, 법궤는 이곳에서 근 20년 동안 안치되었다(7:1, 2). 한편, 벧세메스(Beth-Shemesh)가 해발 약 305m, 그리고 기럇여아림(Kirjath-jearim)이 해발 약 762m에 위치해 있다. 여기의 '기럇여아림'(Kirjath-jearim)은 '숲의 성읍'이란 뜻으로서 오늘날의 위치는 '쿠르엣 엘 에납'(Kuryet el Enab)으로 추정된다. 당시 이 성읍은 벧세메스 북동쪽 약 145km, 예루살렘 북서쪽 약 13km지점에 위치하였다.

'블레셋에서 돌아온 법궤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성막이 있는 실로(Shiloh)로 옮겨가지 아니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을 고려해 볼 수 있다. (1) 아벡 전투(4:9-11) 결과, 블레셋 족속에 의해 당시 실로까지 철저히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2) 실로 성소가 여호와께 더럽혀진 결과 법궤를 빼앗긴 것으로 간주하고, 당시 백성들이 법궤 보관 장소로 실로 성소를 기피하였기 때문이다. (3) 되도록이면 큰 성읍에서 멀리 떨어진 안전한 곳에 법궤를 보관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기럇여아림에 도착한 법궤를 산에 사는 아비나답(Abinadab)의 집에 보관해 둔다. 아비나답은 레위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비록 이 성읍이 레위인에게 할당된 성읍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렇게 봐야 할 까닭은 다음과 같다. (1) 사사 시대에는 레위인들이 자신들의 성읍을 이탈하여 다른 지역에서 생활한 경우가 흔했으며(삿 17:12), (2) 후일 아비나답의 후손들이 언약궤를 옮기는 일에 공식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삼하 6: 3). 한편 '산에 사는'이란 말은 직역하면 '산지에 있는'(in the hill, KJV) 또는 '산지 위에'(on the hill, NIV)란 뜻인데, 이는 곧 아비나답의 접이 기럇여아림 성읍의 교외 산지에 위치했었다는 사실을 암시 한다.


가럇여아림 사람들은 아비나답의 아들 엘리아셀을 거룩히 구별하여 제사장으로 임명한다. '거룩히 구별',이라는 말은 제사장을 임직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출 28:3, 41). 따라서 이러한 표현은 엘리아살이 혈통상 제사장 가문의 후예가 아니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당시의 특별한 상황은 제사장적 직분을 감당할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였다. 따라서 그가 비록 제사장 가문의 후예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레위 지파였으므로 그곳 주민들은 그를 제사장으로 세운 듯하다. 한편 성경은 엘리아살이 어떤 권위에 의해, 또한 어떤 방식에 따라 제사장으로 구별되었는지에 대혜서는 침묵한다.

제사장적 신분으로 거룩히 구별된 엘리아살이 구체적으로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지켰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런데 아벡 전투로 말미암은 실로 파괴 이후 공식적인 예배나 제사는 일단 중지된 듯하다. 따라서 엘리아살의 주임무는 예배나 제사 행위 보다도 법궤를 안전하고도 정결하게 잘 보관. 건사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헹스 텐베르그(Hengstenberg)의 언급은 퍽 인상적이다. "장차 법궤가 그 영광스러운 모습을 다시 드러낼 때까지(마치 충실한 묘지기인 양) 지킨 것이다".


그렇게 법궤가 이십 년 동안 아비나답의 집에 오래(20년 동안) 있게 되었다. 여기서 '이십 년 동안'은 다윗에 의하여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완전히 옮겨진 때까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궤를 빼앗겼던 아벡 전투(혹은 에벤에셀 전투)는 B.C. 1075년에 있었고,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간 때는 그가 예루살렘에서 통치를 시작한 직후인 적어도 B.C. 1003년 이후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의 '이십 년 동안'은 사무엘이 최초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회개를 촉구한 때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3절). 비록 하나님의 언약궤는 일찍이 이스라엘로 돌아왔지만(6:14), 20년이란 기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는 이스라엘이 블레셋 족속들에 의하여 정치적으로 여전히 압력을 받고 있었으며(4 :10), 또한 언약궤는 비록 이스라엘 땅이긴 하지만 여전히 블레셋의 깊숙한 영향권 아래 있는 기럇여아림 땅에 보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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