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설렘으로 비가 오길 기다린다

[사하라의 별빛 아래서]

양배추김치에 진력이 나서 한국에서 오신 지 얼마 안 되신 선교사님에게 한국씨앗을 부탁했다. 고맙게도 열무, 얼갈이 배추, 청경채 씨앗을 나눠주셨다. 마음은 어느새 김칫국부터 마셔본다.

여덟 시간을 달려 집에 오자마자, 열일 제쳐놓고 씨앗들을 맛있게 먹어줄 흙을 준비했다. 경비아저씨에게 용돈을 주고 동네에 널려진 소똥을 모아오게 했다. 옆 동네 양계장에 들려 줄다리기 끝에 결국 적잖은 값을 치르고 닭똥을 넉넉히 사왔다. 그리고 평소 안면이 있는 동네 목공소 아저씨에게 얘기하고 톱밥을 얻어왔다.

쓰레기 소각장에 쌓여진 흙에 소똥과 닭똥, 톱밥을 언고 참기름을 듬뿍 뿌리듯 물을 뿌려가며 삽으로 잘 섞어주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손등으로 몇 번 훔치고 나니 푸짐한 오물비빔밥이 만들어졌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듯 매일 아침저녁으로 오물비빔밥에 물을 흠뻑 뿌려주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흘이 넘도록 하늘을 대신해 비를 내리듯 물을 뿌려주었다. 내가 심지도 뿌리지도 않았는데 물이 닿은 땅마다 어느새 이름 모를 새싹들이 자라난다. 이제, 씨를 뿌릴 때가 되었다고 알려준다. 막대기로 작은 구멍을 파고 씨앗들을 하나하나 정성을 다하여 장사 지내어 준다. 생명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길 축복하며 묻어준다.

기다림은 설렘이다. 기다림은 기대이다. 생명을 품은 씨앗은 아스팔트도 뚫고 나온다. 드디어 하나씩 씨앗들의 무덤에서 연두색 생명들이 손짓하며 올라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차드는 잠깐의 우기를 제외하곤 일년 내내 온통 잿빛이다. 바다도 없지만, 산도 거의 없어 들판은 마치 불도저로 밀어 놓은 듯 밋밋하다. 간간히 서있는 가시나무만이 외로이 황량한 벌판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황량한 땅에서, 작은 텃밭에서나마 초록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고향의 푸성귀를 먹을 수 있다는 기쁨보다, 이웃과 나누는 소소한 즐거움보다, 생명의 능력을 느낄 수 있어 더 좋다. 어느새 텃밭을 가득 매운 초록은 내 안에 계시는 생명의 능력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청동거울이 되어있다.

청경채야 고맙다. 얼큰한 짬뽕에 신선한 생기를 불어넣어주어서 고맙다. 배추야 고맙다. 양배추에 질려 잃어버린 내 밥맛을 다시 찾게 해주어서 고맙다. 열무야 고맙다. 말라리아로 죽다가 살아난 아내에게 맛있는 열무비빔밥을 먹일 수 있어서 고맙다. 씨앗들아, 흙아, 비야, 이슬아, 햇빛아 고맙다. 생명의 고리에 눈뜨게 해주어서 고맙다. 너희가 없다면 우리도 없을 테니까.

그러나 더 많이 고마운 분은 하늘에 계신 농부이다. 우리가 아무리 해산하는 여인처럼 몸부림을 쳐도, 우리가 낳을 수 있는 것은 바람같이 헛된 것뿐이기 때문이다(사 26:18). 우리에겐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수고는 나뭇잎으로 엮은 첫 사람 아담의 치마와 다를 수 없다. 햇빛에 금새 색이 바래고 바삭바삭 부스러져 우리의 부끄러운 부분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만다. 우리는 땅에 묻히면 다시 살아날 수 없다. 우리에겐 죽은 것을 다시 살게 할 생기가 없다.

그러나…… 무덤 속에서 잠자던 사람들이 깨어나서, 즐겁게 소리 칠 것입니다. 주님의 이슬은 생기를 불어넣는 이슬이므로, 이슬을 머금은 땅이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을 다시 내놓을 것입니다. 땅이 죽은 자들을 다시 내놓을 것입니다(사26: 19 새번역, 참조 마 27:52-53)

그러나 마지막 아담이신 나사렛 예수를 통해 우리는 새새명을 이식받았다. 그가 무덤을 열고 나오셨기 때문이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 고맙습니다. 무덤, 죽음을 이기고 생명의 첫 열매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 고맙습니다. 마른 땅 같은 제게 들어와 초록이 가득한 텃밭을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황량한 차드에도 젖은 구름이 찾아와 비를 뿌리면 누가 심었는지 온통 초록으로 뒤덮인다. 황량한 벌판은 초원이 되고 소떼와 양떼가 몰려와 드넓은 목장이 된다. 참으로 신비한 생명의 마술이다. 설렘으로 비가 오길 기다린다.